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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고압 산소와 인권

입력
2018.12.31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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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또 가슴 아픈 일이 있었다. 수학 능력 시험을 마친 고등학생들이 강릉 펜션에서 묵었다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참변을 당한 것이다. 현장에서 세 명이 숨진 채로 발견되었고, 나머지는 병원으로 이송되어 호전되고 있다. 먼저 그들의 무탈한 회복을 빈다.

해당 사건으로 우리에게 일산화탄소 중독과 고압산소치료라는 낯선 치료가 화두가 되었다. 일산화탄소는 산소가 충분치 못한 환경에서 물질이 연소될 때 발생한다. 그 자체로는 독성이 없는 무색무취의 성질을 띤다. 하지만 일산화탄소는 산소에 비해 혈액 내 헤모글로빈과의 결합 능력이 240배나 높다. 만약 인체가 일산화탄소를 다량으로 호흡한다면, 폐로 들어간 일산화탄소는 순식간에 인체의 헤모글로빈을 장악한다. 일산화탄소와 결합한 헤모글로빈은 산소를 운반하지 못한다. 순식간에 인체는 저산소증에 빠진다.

이 상황은 숨이 막혔거나 전신에 피가 통하지 않는 상황과 비슷하다. 장기들은 각자 저산소성 손상을 입는데, 가장 민감한 것은 뇌이고, 그 다음은 심장이다. 뇌 손상을 가장 민감하게 표현하는 것은 의식 수준이다. 화재 현장이나 가스 누출처럼 고농도의 일산화탄소를 흡입할 경우 사람은 눈 깜짝 할 사이에 의식을 잃는다. 이 상태에서도 사람은 호흡을 멈추지 않기에, 그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중독 상황은 이어지고, 뇌 손상으로 사람은 목숨을 잃게 된다.

고압산소치료는 특수한 방에서 고농도의 산소를 대기압의 약 세 배로 가하는 치료다. 일산화탄소 중독의 유일한 치료이기도 하다. 보통의 대기로 돌아왔을 때 인체는 일산화탄소를 배출하기 시작하지만, 저산소 상태가 지속되고 있으므로 외부에서 더 빨리 제거해주어야 한다. 고압의 산소를 호흡하면 일산화탄소의 반감기는 10배까지 줄어들기에, 생존율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신경학적 후유증도 현격히 줄어든다.

적은 양이라면 일산화탄소는 자연스럽게 배출되므로, 가스를 마신 모든 환자가 고압산소치료를 받을 필요는 없다. 의식 저하, 경련, 높은 일산화탄소 농도, 심근 허혈 등의 증상이 나타날 때가 적응증이다. 혈액 내 산소압을 높이는 원리로 잠수병이나 공기 색전증에도 쓰이고, 일반적인 상처나 화상, 염증 치료에도 광범위하게 연구되고 있다. 이 치료를 다방면에 적용하는 것이 최근 응급의학회의 학문적 화두이기도 하다.

하필 사건이 강원도에서 발생했기에 대처가 순탄치 않았다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 반대다. 고압산소치료 기기는 서울에 세 대뿐이지만, 각각 한 명 밖에 들어갈 수 없다. 같은 사건이 서울에서 발생했더라면, 시스템의 지지부진함을 만방에 보여주었을 것이다. 강원도는 다행히도 가장 치료시설이 잘 되어 있는 지역이었다. 그나마 10년 전에는 치료 가능한 병원이 서울에 한 곳뿐이었다. 누군가 한 명만 사용해도 다른 환자는 경기도나 충청도로 가는 시스템이었다.

이 미비의 이유는 일산화탄소 중독의 환자군에 있다. 불의의 사고로 고압산소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현격히 줄어들었다. 현실적으로 고압산소치료가 필요한 대부분의 환자는 밀폐된 공간에서 자발적으로 연기를 피우고 발견된 사람들이다. 일시적으로나마 자신의 생명권을 버리려 했던 사람들의 치료는 다방면으로 복잡하다. 이들의 생명권을 이들이 아닌 사람들이 미리 지키자고 주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음독이나 가스중독의 치료 시스템은 지원에서 가장 멀어져 있고, 인권의 사각지대 중에서도 가장 사각지대에 있다. 그래서 수십억짜리 고압산소치료 기계의 수가는 시간당 삼만 원에 머물러 있었고, 인구 천만 서울에 세 대뿐이었다. 방치되고 있었다는 표현에 가깝다. 이런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선진국의 척도이자, 이번처럼 예기치 못한 사건에도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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