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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민주노총 ‘파업 기차’는 어디로 달리나

입력
2018.12.07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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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은 11월 총파업으로 무엇을 얻었나. 16만을 동원하고도 소득이 없다. 외려 보수언론을 앞세운 대자본의 역공으로 수세에 몰리는 형국이다. 파업 목적이 분명치 않고 전략은 낙제점이다. 적폐청산을 들고 나왔는데, 이 문제라면 문재인 정부가 그나마 잘하고 있기에 지켜볼 일이다. 진보적이라 할 수 없는, 자유주의 정부 치고는 사법농단 문제까지 밀고 나가고 있으니 제법이다. ‘직장 갑질’로 불리는 작업장 적폐 청산 역시 그 기세에 힘입은 바 크거니와 여기에 민주노총이 기여한 것은 없다. 해고까지 각오하고 용기를 낸 평범한 노동자들의 분투 덕분이다.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도 모두가 이미 알고 있다. 대기업 노조만 잘 모른다. 물론 특수고용직과 해고자 등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잘못이고 고쳐야 한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노동자임에도 노조의 보호에서 소외된, 600만이 넘는 비정규직의 노동권이다. 이들의 조직률은 4%에 불과하다. 대부분 하청구조에 묶여 대공장 정규직의 고임금과 고용안정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민주노총이 조금이라도 비정규직의 조직화를 도왔다면 이들의 처지가 지금처럼 열악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 법외노조인 전교조를 염두에 둔 것이라면 총파업은 참 염치없는 일이다. 결국 문제를 제기하면서 스스로 ‘문제’가 된 셈이니 ‘전략적’으로는 빵점이다. 어설프게 거론한 사회대개혁은 무얼 어떻게 개혁하자는 말인지 막연하기만 하다.

파업은 전략적 상호작용이다. 상대가 있는 게임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대자본의 역량이나 정치권의 움직임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 중요하다. 탄력근로제 저지라는 정당한 이슈를 제기하고도 우위를 점하기는커녕 대자본에 보기 좋게 활용만 당한 이유는 상대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악하고 흉측한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면 그 운동이 지니고 있는 혁명적 사고가 현실에서는 자신의 뜻과 다르게 반혁명에 도움을 준다”는 룩셈부르크의 경고(‘대중파업론’ㆍ풀무질)가 맞아떨어졌다고나 할까. 기간확대는 노동계로선 화날만도 하다. 실태조사를 통해 2022년까지 준비키로 약속하고도 ‘흉측한’ 정치권이 뒤집어 버렸다. 황당하겠으나, 그게 우리 노동정치의 현실이고 수준이다.

문제는 민주노총의 역량이다. ‘사악한’ 재계는 추가고용 노력은 회피한 채 쉽고 간명한 ‘탄력근로제론’(성수기엔 좀 더 일하고 비수기엔 더 쉬자)을 생산해 빠르게 여론을 흡수했다. 물론 왜곡된 주장이다. 지금도 20주 동안 연속해서 집중근로(주당 64시간)가 가능하다. 횟수 제한도 없다. 웬만한 업종이라면 성수기 수요에 대응하기에 충분하다. 오히려 과로방지책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민주노총은 이를 설득해 낼 레토릭 하나 못 만들고 있으니 안타깝다고 해야 할까.

무엇보다 파업이라는 ‘진중한’ 수단을 스스로 가벼이 여기는 것 같아 유감이다. 김명환 위원장은 이미 지난 3월에 결의된 파업을 일정에 따라 결행한 것이라고 하는 데, 그렇다면 파업은 정세나 역량과는 상관없이 미리 정해진 날에 벌이는 연례행사라는 말인가. 로자가 경계한 것처럼, 대중파업은 “(기업이) 이사회 열 듯 지정된 날짜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호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다가 마음먹으면 꺼내 쓸 수 있는 주머니칼”도 아니다(위 책, 17쪽).

‘광주형 일자리’ 모델이 합의되는가 싶더니 또 난항이다. 노사정 타협으로 일자리를 만드는 실험은 새롭고도 귀중하다. 허점이 있으나 고쳐 나갈 기회 또한 없지 않다. 성사토록 지혜를 모아야 할 텐데, 현대차 노조는 파업을 경고하며 으름장이다. 그들의 기차는 ‘어쨌든 달리는 것’인가 보다. 그러나 기차가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는지, 기차의 동력은 얼마나 남았는지는 자신도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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