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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선거구제 개편안 합의 실험

입력
2018.12.05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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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선거구제 관련 전문가간 합의 형성 실험을 했다. 서울대 강원택, 경북대 하세헌 교수가 참여했는데, 생각이 전혀 다른 두 전문가가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 매우 흥미로웠다. 두 전문가는 사안마다 다른 소신에도 불구, 토론을 거치며 자연스레 합의를 도출했다. 당시 사회자로서 그 과정을 소개하고자 한다.

합의 형성은 조정(調停ㆍmediation) 절차를 따랐다. 일단 선거구제 개편 목표를 논의했다. 비례성을 높여 사표(死票)를 줄이고 지역주의를 완화하자는 데 공감했다. 그리고 선거구제 개편 성사를 위해 대안은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데도 두 전문가는 합의했다. 사실 상대의 대안에는 반대해도, 그 대안이 추구하는 목표는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탈원전 측은 안전성을, 친원전 측은 경제성을 더 중시하는 것이지 상대의 목표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이렇게 상대 목표를 인정하고 이를 대안에 반영토록 하는 것이 조정 절차의 핵심이다.

1번 의제는 연동형과 병립형 비교였다. 연동형은 정당투표의 득표율에 따라 총 의석을 정한 후 그 의석에서 지역구 의원 수를 뺀 숫자를 비례대표로 정하는 방식이다. 사표 최소화에는 부합하나, 정당 난립과 초과의석 가능성이 지적됐다. 초과의석이란 지역구 의원 수가 정당투표에 의한 의석 총수를 초과하는 상황으로서 당연 비례대표는 없게 된다. 반면 병립형은 우리의 현행 제도로 지역구 의석에 정당투표에 의한 비례대표를 추가하는 방식이다. 2번 의제인 비례대표 선출단위도 같이 논의했다. 비례대표를 전국 단위로 하면 비례성은 좋아지나, 지역별 대표성은 약화된다. 반면 6개 권역별로 비례대표를 뽑으면 지역주의 해소엔 도움이 되나 대표성이 약화되고 초과의석이 발생한다.

사실 거대 정당은 권역별 병립형을, 중소 정당은 전국 단위 연동형을 선호한다. 두 전문가의 의견도 그렇게 나뉘었으나 결국 이를 절충한 권역별 연동형으로 합의됐다. 이 합의는 비례성 강화가 핵심목표라는 공감이 있어 가능했다. 비례성 강화를 위해 연동형을 채택하면서 그 부작용을 해소하자는 원칙에 합의한 것이다. 부작용의 첫 번째는 연동형에 대한 거대 정당의 반대였다. 거대 정당에 불리한 연동형을 전국 단위로 시행하면 거대 정당의 반대로 개편이 물거품 된다는 점에 공감을 이루어 선거단위가 ‘권역별’로 합의됐다. 물론 권역별이 지역주의 완화에 도움 된다는 점도 고려됐다. 연동형으로 인한 정당 난립 부작용은 정당 득표율이 5%가 넘어야 의석을 배정하는 봉쇄 조항으로 해소하자고 합의했다. 권역별이나 봉쇄 조항 모두 연동형으로 인한 거대 정당의 불이익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3번 의제인 의원 정수확대에 대해서도 의견은 갈렸다. 국민감정을 고려해 확대에 부정적인 입장과, 의원 수가 늘면 그만큼 행정부 감시가 강화되므로 의원들이 밥값은 충분히 한다는 입장이 대립했다. 두 전문가는 결국 의원 정수를 확대해야 선거구제 개편이 성사된다는 점에 공감했다. 의원 정수를 확대하는 대신 의원의 특권 축소 필요성에도 합의했다. 과거에 비해 인구는 늘었지만 국회의원 수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는 사실도 참고했다.

긴 토론을 거쳐 두 전문가는 “의원 정수 늘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권역별로 시행하자.”는 합의에 도달했다. 비례대표 선정 절차 개혁에도 공감했다. 모든 의사결정은 이해관계와 논리적 판단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번 실험은 논리적 판단 영역에서 가능한 합의를 보여준다. 물론 실제 선거구제 협상은 정당의 이해관계가 있어 이보다 훨씬 어렵다. 그러나 이번 실험에서 전문가들은 서로의 목표를 인정하고 핵심목표를 공유하면 합의가 쉬워진다는 경험을 했다. 마찬가지로 상대의 이해관계를 인정하고 선거구 개편의 최종목표를 공유하면 합의가 쉬워진다. 선거구제 개편, 충분히 합의할 수 있다.

박진 국회미래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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