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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전화 일부 아직 먹통… KT ‘관로 독점’이 피해 키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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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전화 일부 아직 먹통… KT ‘관로 독점’이 피해 키웠나

입력
2018.12.03 04:40
수정
2018.12.03 10:0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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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구 화재’ 상공인 불편 여전

공기업 시절 전국 인프라 구축

국내 전체 관로 72.5% 보유

인입관로 분배로 동시 재난 막아야

지난 26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 아현국사 화재현장에서 KT 직원들이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지난 26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 아현국사 화재현장에서 KT 직원들이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KT가 서울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 피해의 완전 복구 목표 시한으로 잡은 일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인근 소상공인 일부는 유선 전화가 작동하지 않는 등의 불편을 겪고 있다. 복구 작업이 늦어지는 배경 가운데 하나로 통신 필수설비 중 하나인 ‘관로(유선 케이블을 깔 수 있는 관)’를 사실상 KT가 독점하고 있는 현실이 지목되고 있다.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 다른 유선서비스 업체들이 자체 관로를 확보하지 못해 집단상가 등 중소형 건물에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KT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졌고, 이번 화재 때처럼 유사시 타사 케이블을 활용한 우회 연결 등도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예기치 않은 ‘통신 블랙아웃’ 피해를 줄이고 발빠른 대처를 하기 위해선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통신 필수설비 공동활용을 보다 적극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KT밖에 못쓰는데…” 끊기면 속수무책

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KT는 현재 국내 전체 관로의 72.5%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는 건물 근처 맨홀부터 해당 건물까지 이어져 실질적으로 유선 서비스 제공 여부를 좌우하는 ‘가입자에게 연결된 관로’도 포함된다. 업계에선 이를 마지막 인입(引入) 관로란 뜻의 ‘라스트 원마일’이라고도 부른다. 스스로 인입관로를 구축하지 못한 사업자는 아무리 건물 근처까지 케이블을 깔아도 건물 입주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고 기존 인입관로를 이용대가를 내고 빌려 써야 한다.

KT는 공기업이던 한국통신 시절 전국에 관로를 설치, 거의 모든 건물에 진입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했다. 2002년 민영화 이후에도 관로 등 필수설비를 정부로부터 편입해 위탁 운영 중이다. 반면 후발 주자인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은 건물주나 지방자치단체의 굴착 불허 등 물리적 제약과 비용 때문에 인입관로가 없어 여전히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는 건물이 상당수다.

아현지사 화재로 피해를 입은 서울 중구, 마포구, 은평구 등은 특히 구도심 지역에 속해 기존 KT의 관로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환경인 경우가 많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이 일대 3~5층 집단상가 건물들에서 KT의 유선서비스 점유율은 최대 7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 사업자별 관로 보유 비중. 강준구 기자
주요 사업자별 관로 보유 비중. 강준구 기자

◇실질적 관로 공동활용 방안 찾아야

정부는 소비자 선택권 축소, 경쟁 제한 등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2003년부터 관로 등 필수설비를 공동 활용하도록 했다. 하지만 KT가 거부하면 사실상 분배를 강제하기 어려운 제도상의 허점으로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태다.

만약 이번 화재 피해 지역 관로가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와 활발하게 공동 활용됐다면, KT 가입자들이 애타게 복구만 기다릴 게 아니라 타 통신사 유선망을 이용할 수 있었을 것이란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과기정통부는 최근 20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통신사들의 5G 인프라 투자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필수설비 공동활용 활성화를 위한 이용대가 재산정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KT와 경쟁 업체들이 좀처럼 이견을 줄이지 못해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지난 9월 중 대가 협상을 마무리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계속 늦어지고 있다.

일각에선 관로를 공동으로 써도 이번처럼 화재가 나면 모든 서비스가 함께 끊기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현재 공동활용이 논의되는 대상은 아현지사 밑에 깔린 것 같은 통신국사 내 관로가 아니라 인입관로다. 아현지사에서 불이 나도 타사 통신국사는 멀쩡하므로 인입관로를 통한 서비스 제공에 문제가 없는 셈이다.

KT도 할 말은 있다. 민영화 후에도 적극적인 투자로 확보한 관로를 저렴한 가격에 나눠 쓰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간의 투자비용이나 가입자 규모 등에 따라 현실적인 이용대가를 도출하는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KT 관계자는 “이번 사고와 같은 피해를 막으려면 오히려 이용대가 인상을 통해 사업자들의 투자 활성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재일 의원은 “이용자들이 여러 회사의 망을 보완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필수설비를 같이 활용하도록 해야 하는데 과기정통부가 소극적이어서 이번에도 피해가 컸다”며 정부의 정책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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