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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종식, 걸프전 승리, 최장수 美 대통령… ‘아버지 부시’ 눈을 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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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종식, 걸프전 승리, 최장수 美 대통령… ‘아버지 부시’ 눈을 감다

입력
2018.12.01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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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생전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생전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아버지 부시’로 불려온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밤10시쯤 텍사스주 휴스턴의 자택에서 노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94세.

AP, CNN 등 외신에 따르면 아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이날 가족 대변인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젭과 닐, 마빈, 도로 그리고 나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사실을 알리게 돼 무척 슬프다”고 밝혔다. 이어 “매우 고귀한 성품을 갖춘 최고의 아버지였다”며 “부시 일가 전체는 그의 삶과 사랑, 그간 아버지를 걱정하고 기도해준 분들의 연민, 그리고 여러 친구들과 동료 시민들의 위로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덧붙였다. 앞서 4월 부인 바버라 부시가 92세의 일기로 별세한지 7개월여 만이다. 고인은 2012년 파킨슨병을 앓는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휠체어와 전동스쿠터에 의지해 생활해왔지만, 2년 뒤 90세 생일을 맞아 스카이다이빙을 선보이며 건재를 과시했다. 지난해 2월에는 미국 슈퍼볼 경기장에 등장해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부인을 먼저 보낸 이후에는 입ㆍ퇴원을 반복하며 병원 치료를 받아왔다고 한다.

공화당 소속 제럴드 포드(왼쪽부터) 전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후보, 조지 HW부시 부통령 후보가 대선을 앞둔 1980년 11월 유세장에서 맞잡은 손을 치켜들고 인사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공화당 소속 제럴드 포드(왼쪽부터) 전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후보, 조지 HW부시 부통령 후보가 대선을 앞둔 1980년 11월 유세장에서 맞잡은 손을 치켜들고 인사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전쟁영웅, 하원의원, 대통령…. 재선에는 실패 

고인은 청년 시절 전쟁영웅이었다. 예일대에 합격했지만 1941년 진주만 공습을 지켜보며 18세의 나이에 해군에 입대, 전투기 조종사로 58회의 전투에 참여해 3개의 무공훈장을 받았다. 대학 졸업 후 텍사스주로 옮겨 석유회사 경영에 참여하면서 상당한 돈을 벌었다.

투자은행가로 성공해 10여년간 상원의원을 지낸 부친을 따라 정계에 입문했다. 64년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다가 2년 뒤 하원의원에 당선돼 재선까지 지냈다. 다시 도전한 70년 상원의원 선거에 재차 낙선했지만 73년까지 유엔 주재 대사로 활동했고, 초대 베이징 주재 국무부 연락사무소장을 거쳐 77년 중앙정보국(CIA) 국장에 기용됐다.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부부가 1992년 8월 백악관 경내 정원 잔디밭을 애견과 함께 걸어가며 인사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부부가 1992년 8월 백악관 경내 정원 잔디밭을 애견과 함께 걸어가며 인사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대통령 도전은 성공과 실패의 연속이었다. 80년의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로널드 레이건에게 패했지만 러닝메이트로 지명돼 두 차례 승리하면서 8년간 부통령을 지냈다. 이어 88년 민주당 듀카키스 후보를 누르고 마침내 대권을 잡았다. 하지만 92년 대선에서 민주당 빌 클린턴 후보에게 밀려 4년 만에 백악관을 떠났다. 4년 중임제를 택한 미국에서 20세기 이후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은 4명뿐이다.

반전은 계속됐다. 불과 7년 후인 2000년 장남 조지 W 부시가 43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부시 집안은 과거 케네디가의 명성에 버금가는 미국의 유력 정치가문으로 확고한 입지를 굳혔다. 미국 역사상 두 번째 ‘부자(父子)’ 대통령이기도 하다.

조지 W 부시(왼쪽)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 시절인 2008년 8월 아버지 조지 HW 부시와 주중 미국 대사관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나란히 앉아 대화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조지 W 부시(왼쪽)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 시절인 2008년 8월 아버지 조지 HW 부시와 주중 미국 대사관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나란히 앉아 대화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냉전에 종지부, 새 역사를 열다 

고인은 탈냉전의 새 시대로 치닫는 변화와 혼돈의 거센 물결을 능숙한 외교력과 단호한 군사력으로 헤쳐가면서 미국 주도의 평화체제를 구축했다. 집권 첫해인 89년 12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몰타선언’을 통해 냉전 종식을 선언했다. △베를린 장벽 붕괴 △동유럽 소련 위성국가의 몰락 △동서독 통일 △소비에트 연방 해체 △전략무기 감축협정 등 유럽을 중심으로 급변하던 세계 정세를 주도하며 동서 진영간 대립구도의 질긴 사슬을 끊었다.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1991년 10월 스페인 마드리드의 소련 대사관에서 열린 기자회견 도중 옆에 서 있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공산당 서기장을 바라보며 제스처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1991년 10월 스페인 마드리드의 소련 대사관에서 열린 기자회견 도중 옆에 서 있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공산당 서기장을 바라보며 제스처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동시에 필요한 군사행동은 주저하지 않았다. 89년 파나마를 침공해 마약 밀매 혐의를 받던 마누엘 안토니오 노리에가 대통령을 체포했고, 90년 8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6일 만에 파병을 선언하며 34개국의 다국적군 12만 명이 투입된 공습을 주도했다. 한국도 참여한 당시 ‘사막의 폭풍’ 작전은 미 지상군을 중동에 투입한 첫 사례다.

이처럼 미국의 명성을 드높인 해외에서의 잇단 성과로 대통령 지지율이 89%까지 치솟기도 했다. 하지만 경제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무역ㆍ재정적자(쌍둥이 적자) 누적과 높은 실업률에 민심이 등을 돌리면서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라는 클린턴 캠프의 슬로건에 일격을 맞고 92년 대선에서 통한의 패배를 당했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대통령 재임기간인 89년 2월과 92년 1월 방한해 국회에서 연설했다. 퇴임 후인 2005년과 2008년에는 경북 안동을 방문하기도 했다.

올해 94세인 고인은 역대 최장수 미국 대통령이다. 앞서 93세로 세상을 떠난 제럴드 포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기록을 깼다. 특히 부인 바버라 여사와 함께 ‘국민 할머니’, ‘국민 할아버지’로 불리며 마치 이웃을 접하는 듯한 친근하고 푸근한 이미지로 미국인 마음 속에 각인돼 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2002년 11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아들 젭 부시의 플로리다 주지사 재선을 기뻐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바버라 여사. 로이터 연합뉴스
2002년 11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아들 젭 부시의 플로리다 주지사 재선을 기뻐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바버라 여사.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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