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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스토리]커제 ‘귀환’ 이냐, 안국현 ‘반란’이냐…2018 삼성화재배 ‘전운’

입력
2018.12.01 12:00
수정
2018.12.0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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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객관적인 전력상 세계대회 5회 우승 경력의 중국 간판스타 커제 9단이 앞서 

 하지만 최근 ‘중국 기사 킬러’로 떠오른 안국현 8단에게도 기회 올 수 있어 

 커제 9단 역시 안국현 8단의 최근 기세에 경계심 높여…중,후반 반상운영 중요 

“이번 결승전을 위해 다른 대국 수까지 줄였다.”(커제 9단)

“바둑돌은 둥글다. 누구도 승부를 예단할 순 없다.”(안국현 8단)

각오는 비장했다. ‘반상(盤上) 황제’로의 강한 귀환 의지에 ‘중국 킬러’로 떠오른 저격수 또한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3일부터 삼성화재 유성캠퍼스에서 펼쳐질 ‘2018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우승상금 3억원)결승 3번기(3판2선승제)를 앞둔 두 선수의 출사표는 그랬다. 이번 대회에서 명성을 다시 되찾겠다는 게 중국 커제(21) 9단의 야심이지만 세계대회 우승에 목마른 우리나라 안국현(26) 8단은 반란을 일으킬 태세다.

‘2018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결승에 진출한 커제(오른쪽) 9단과 안국현 8단이 이달 7일 삼성화재 유성캠퍼스에서 악수로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2018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결승에 진출한 커제(오른쪽) 9단과 안국현 8단이 이달 7일 삼성화재 유성캠퍼스에서 악수로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외형적인 전력상에선 커제 9단이 한 수 위 

일단 객관적인 지표에선 커제 9단이 한 수 위다. 커제 9단은 2015년 10월부터 올해 10월까지 무려 37개월 동안 자국내 랭킹 1위 자리를 고수, ‘1인 천하’ 시대를 열었던 중국 바둑계 간판스타다. 이 기간 동안, 커제 9단은 사실상 세계 바둑계에서도 절대강자로 군림했다. 현재는 미위팅(22) 9단에 밀려 2위로 내려 앉았지만 이제 막 20대에 들어선 커제 9단의 위상은 여전하다. 중국 간판 스타인 커제 9단이 현재까지 보유한 세계 대회 우승 트로피는 5개. 커제 9단은 이 가운데 2015~16년 삼성화재배에서 잇따라 우승, 2년 연속 세계 대회 타이틀을 획득한 중국내 첫 프로기사로 기록돼 있다.

이에 반해 안국현 8단의 외형적인 전력은 약세인 게 사실이다. 한국랭킹 21위인 안국현 8단의 우승은 지난해 김지석(29) 9단을 누르고 가져간 ‘제22기 GS칼텍스배 프로기전’(우승상금 7,000만원)가 유일하다. 세계대회 결승 진출은 이번 삼성화재배가 처음이다. 안국현 8단은 커제 9단과의 상대전적에서도 밀려 있다. 2016년 ‘제1회 신아오배 세계바둑오픈전’(우승상금 3억7,000만원) 64강전에서 커제 9단에게 무릎을 꿇었다.

커제(맨 오른쪽) 9단이 이달 7일 삼성화재 유성캠퍼스에서 열린 ‘2018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준결승에서 셰얼하오 9단과 대국을 벌이고 있다. 커제 9단은 셰얼하오와의 이 대회 준결승 3번기 대국에서 2승1패로 결승에 진출했다. 한국기원 제공
커제(맨 오른쪽) 9단이 이달 7일 삼성화재 유성캠퍼스에서 열린 ‘2018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준결승에서 셰얼하오 9단과 대국을 벌이고 있다. 커제 9단은 셰얼하오와의 이 대회 준결승 3번기 대국에서 2승1패로 결승에 진출했다. 한국기원 제공

 ◇커제 9단 “99% 불리한 바둑도 역전하는 무서운 기사가 안국현 8단이다”…경계심↑ 

보여진 전적과는 달리 결승을 앞둔 두 선수의 임전태세는 사뭇 진지했다. 커제 9단은 특히 안국현 8단의 끈질긴 뒷심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커제 9단은 “안국현 8단은 99% 불리한 바둑도 한발 짝, 한발 짝씩 추격해서 역전하는 무시무시한 기사다”며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말이 있는 데, 내용을 봤을 때 안국현 8단의 실력이 전보다 훨씬 향상된 것 같다"면서 상대방을 치켜 세웠다. 탕웨이싱(25) 9단과 벌였던 삼성화재배 4강전에서 2대0으로 승리한 안국현 8단의 대국을 염두에 둔 평가였다. 안국현 8단은 실제 탕웨이싱과 벌인 삼성화재배 4강전 2국에서 ‘탕웨이싱이 97% 유리하다’는 인공지능(AI)의 예측을 뒤엎고 기적 같은 역전승으로 마무리 했다. 큰 경기 경험에서 앞선 커제 9단에게 사실상 세계대회에선 무명에 가까운 안국현 8단의 이런 집요한 승부근성은 부담으로 작용할 공산도 크다.

하지만 속내를 숨기진 않았다. 실제 안국현 8단의 실력 평가와는 별도로 커제 9단은 이번 대회 준비에 많은 공을 들였다는 점도 내비쳤다. 커제 9단은 “나름대로 선택과 집중을 하면서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불참하는 대국도 있다”며 “바둑팬들은 본선 대진표에서 내 이름을 발견하지 못하면 그게 내 성적이 안 좋아져서 그런 줄 알지만 실제는 대국 수를 줄이고 내가 집중하고 싶은 대회를 준비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커제 9단은 이어 “이번 삼성화재배 결승전을 앞두고도 대국수를 줄이고 컨디션 조절을 잘해서 좋은 결과를 내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안국현(맨 오른쪽) 8단이 이달 6일 삼성화재 유성캠퍼스에서 열린 ‘2018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준결승에서 탕웨이싱 9단과 대국을 펼치고 있다. 안국현 8단은 이 대회 준결승 3번기 대국에서 2대0으로 결승 티켓을 따냈다. 한국기원 제공
안국현(맨 오른쪽) 8단이 이달 6일 삼성화재 유성캠퍼스에서 열린 ‘2018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준결승에서 탕웨이싱 9단과 대국을 펼치고 있다. 안국현 8단은 이 대회 준결승 3번기 대국에서 2대0으로 결승 티켓을 따냈다. 한국기원 제공

 ◇안국현 8단 “주눅 들지 않고 패기 있게 둘 것” 

안국현 8단의 기세 역시 충만하다. 무엇보다 실력과 무관한 커제 9단의 ‘이름값’엔 위축되진 않겠다는 생각이다. 안국현 8단은 “어차피 승부는 모르는 것”이라며 “이번 결승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고 승부에 대한 강한 집념을 드러냈다. 자신과 상대방의 장,단점을 바탕으로 한 반상 운영 비기도 누설했다. 안국현 8단은 “어렵고 복잡한 상황이나 전투에서 좋은 수를 찾지 못하는 건 부족하지만 마지막 숨이 넘어가기 직전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게 내 장점이다”며 “처음부터 끝까지 무난하게 대국을 두지만 일거에 판세를 뒤집는 파괴력이 약해 보이는 커제 9단의 스타일을 감안하면 결국 초,중반 판짜기가 승부의 열쇠가 될 것 같다”고 귀띔했다. 난적인 탕웨이싱 9단을 누르고 결승전에 진출한 만큼, 컨디션 또한 나쁘지 않다고 전했다. 안국현 8단은 “까다로운 기사를 상대로 어렵게 승리를 가져와서 그런 지, 컨디션은 좋은 편이다”며 “현재 국가대표팀에서 커제 9단에 대한 가상 연구 등으로 결전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돌가리기에 대한 걱정도 덜었다고 했다. 안국현 8단은 “예전엔 커제 9단이 백돌을 쥐었을 때 승률이 월등했지만 요즘엔 그런 것도 없는 것 같다”며 “흑돌이나 백돌이나 내 바둑에만 충실하게 두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커제 9단은 최전성기인 2015년 백돌을 쥔 대국에서 전무후무한 34연승 기록까지 세웠다. 이어 2016년에도 백돌을 쥐고 80% 이상의 승률도 거뒀지만 최근 들어 커제 9단의 이런 ‘백번불패’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

커제(맨 오른쪽) 9단과 안국현 8단이 2016년 ‘제1회 신아오배 세계바둑오픈전’ 64강전에서 대국을 벌이고 있다. 당시 이 대국에선 커제 9단이 안국현 8단에게 승리했다. 시나바둑 제공
커제(맨 오른쪽) 9단과 안국현 8단이 2016년 ‘제1회 신아오배 세계바둑오픈전’ 64강전에서 대국을 벌이고 있다. 당시 이 대국에선 커제 9단이 안국현 8단에게 승리했다. 시나바둑 제공

 ◇”반란의 가능성은 충분”…전문가 승률 전망, 커제 9단(60%) vs 안국현 8단(40%)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커제 9단의 우세를 점치면서도 최근 분위기에선 안국현 8단에게도 기회는 충분하단 의견이다. 현 국가대표팀 코치 겸 이번 삼성화재배 결승전 중계 해설에 나설 박정상(34) 9단은 “객관적인 전력에선 안국현 8단이 불리한 건 사실이다”면서도 “다만, 올 들어 커제 9단이 우리나라 선수에게 재미를 보진 못한 반면 안국현 8단은 중국 기사들에게 강했다는 건 분명히 긍정적인 부분이다”고 분석했다. 실제 커제 9단은 올해 한국 선수들에게 7승8패(승률 46.66%)로 절반 이하의 승률에 그쳤다. 한 때 세계 바둑계를 지배했던 커제 9단의 존재감을 고려하면 기대 이하의 성적이다. 하지만 안국현 8단은 올해 중국 기사들과의 맞대결에서 8승1패(승률 88.88%)를 기록하며 천적으로 떠올랐다. 안국현 8단에게 패한 기사들 가운데선 탕웨이싱 9단(2패)과 렌샤오(24) 9단(1패), 양딩신(20) 7단(1패), 퉁멍청(22) 6단(1패) 등 쟁쟁한 선수들이 다수 포함됐다.

커제 9단이 여전히 강자이긴 하지만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과거의 모습과 달라졌다는 부분도 눈 여겨볼 대목이다. 바둑TV 해설위원 겸 국가대표 코치인 홍민표(34) 9단은 “현재 기세나 컨디션 부분에선 안국현 8단이 한 풀 꺾인 것으로 보이는 커제 9단에 비해 다소 우위에 있는 것 같다”며 “안국현 8단이 커제 9단에게 일방적으로 끌려가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국현 8단의 특기를 최대한 살려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바둑TV 해설위원인 송태곤(32) 9단은 “커제 9단이 유리한 건 분명하다”면서도 “끈질긴 면이 장점인 안국현 8단이 반상 운영을 길게 이끌어 간다면 커제 9단의 실수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며 “최근 중국 기사들에게 자신감을 얻은 안국현 8단이 의외의 승부를 펼칠 수 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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