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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무에타이와 최저임금

입력
2018.12.04 18:02
수정
2018.12.07 16:1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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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곳곳에서 어린 아이들이 수련하는 무에타이 도장이 성업이라고 한다. 무에타이는 천년의 역사를 가진 태국 전통 무술로 UFC, K-1과 같은 격투기의 일종이다. 보호장구 없이 글러브만 끼고 격투를 벌이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고, 뇌손상 골절 등 신체 훼손이 불가피하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어린 아이들이 출전하면서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다. 지난 달에도 방콕에서 열린 자선경기에서 13세 소년이 상대 선수의 주먹에 맞아 뇌내출혈로 사망했다. 숨진 소년은 8세 때부터 지금까지 170여 차례나 경기에 출전했다.

□ 무에타이는 어린 아이들에게 일종의 가족 밥벌이다. 나이 규제가 없기 때문에 4세 아이까지 링 위에 오른다. 인권단체와 의학계는 어린 선수들이 돈벌이 수단으로 위험에 내몰린다고 반대해왔다. 이번 사건으로 12세 미만 아동의 대회 출전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이 제출됐다. 하지만 무에타이 업계의 반발이 심해 매번 입법 시도는 무산됐다. 무에타이 선수들도 입법에 반대한다. 태국의 15세 이하 무에타이 소년은 어림잡아 30만 명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달 김해와 창원 등지에서 전국 규모로 무에타이 대회가 개최됐다.

□ 1819년 영국 의회에서는 아동 노동을 규제하는 면직공장 규제법을 상정했다. 9세 미만 아동의 경우에만 고용을 금지하고, 10세부터 16세까지의 청소년은 고용이 가능했다. 단지 이들의 노동시간을 하루 12시간으로 제한했다. 그럼에도 이 법안은 엄청난 논란을 초래했다. 노동과 계약의 자유를 침해해 자유시장의 기반을 훼손한다는 상당수 상원 의원들의 주장 때문이었다. 공장주는 물론 가난한 아이들조차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이 법안에 반대했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장원리와 규제가 충돌하는 방식은 별반 차이가 없다. 최저임금 인상 문제도 마찬가지다. 최소 생계 유지를 위해서는 노동자의 최저임금이 지금보다 대폭 인상돼야 한다. 그래서 정부가 개입해서 임금수준을 결정하고 규제를 가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무에타이나 면직 공장 경우와 유사한 일이 벌어진다. 최악의 조건에서도 돈벌이를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다. 사용자는 물론 일자리에 밀려날 우려가 있는 노동자들조차 반대한다. 당위와 현실을 일치시키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조재우 논설위원

※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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