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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건축학개론

입력
2018.11.22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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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집을 짓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다. 건축은 상상력과 기술, 그리고 법적 요소의 조합이다. 건물을 만들고, 단지를 조성하고, 공간을 배치하는 것은 창조이자 종합예술적 작업이다. 하지만 예술적 감성과 상상력만으로 건물이 올라갈 수는 없다. 건축공학적 고려가 더해져 구조, 설계, 시공이 맞물려야 비로소 완성된 결과물이 나온다. 멋진 외형과 아이디어만큼, 세부 단면도와 기술적 계산들도 필요하다. 어떤 형태의 건축공사든 움직여선 안 되는 기둥과 내력벽이 있고, 또 없앨 수 있는 가벽도 있다. 착공에서 완공까지 많은 법적 절차와 규정이 있다. 단계별로 수반되는 예산은 기본 전제조건이다.

한반도와 동북아가 새 정치ㆍ경제적 틀을 짜는 변환기를 맞고 있다. 학계와 정책 부서에서는 안보ㆍ평화체제 구축을 종종 ‘건축(architecture)’에 빗대 논의한다. 그동안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통일, 평화, 협력 등에 관한 수많은 조감도를 그리고, 지우고, 고쳐왔다. 그런 과정은 건축학개론이 다루는 내용들과 유사하다.

올 한 해 동안 한국이 남북한 평화 구축과 동북아 평화체제를 만들기 위해 그려낸 조감도는 큰 관심을 받았다. 국민들은 새로 구상되는 평화 건축에 대해 어느 때보다도 큰 기대를 갖고 있다. 그러나 최근 여러 외교 무대에서 한국이 제시한 조감도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는 다소 냉정했다. 이해 부족 때문인지 홍보 부족 탓인지 아쉬운 평가가 내부에서 들려오지만, 그런 객관적 평가에서 눈여겨볼 부분이 있다.

북핵 협상과 남북 관계라는 구조물에서 하중을 견뎌야 하는 안보적 요소는 기둥과 내력벽에 있다. 공교롭게도 이 부분은 한국이 주도권을 쥐고 시공을 하기 어렵다. 핵 문제는 미북 사이의 협상 구도가 중심이고, 안보체제는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하지만 동시에 미중 관계의 단면을 반영한다. 내력벽 몇 개 터서 새 공간을 확보하는 게 무슨 문제냐는 입장과, 잘못 건들면 건물이 무너질 수 있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닿아 있다. 사실 흉물스러운 두꺼운 벽과 기둥 몇 개를 제거하면 이제까지 보지 못한 새 공간의 활용이 가능할지 모른다. 실제 그렇게 해도 건물이 잘 버틸지, 다른 대체재로 교체 가능할지는 엄밀하고 객관적인 계산을 필요로 한다. 법규도 까다롭다. 대북 제재와 여러 국제조약들이 이러한 법적 고려 요소다.

상상력을 발휘해 그간 생각하지 못했던 공간과 구도를 찾아내고, 거기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분명 멋진 작업이다. 하지만 기술적 계산과 검증 없이 건물이 여러 층 올라가기란 어렵다. 멋진 집에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전한 집에 살고 싶어 하는 것도 사람의 당연한 심리다. 법적 문제, 예산 문제에서 여전히 불안감이 남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력벽과 기둥만 쌓아놓고 마냥 기다릴 수도 없다. 이거 손대면 큰일 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새로운 공법이 있는지, 대안적 조감도는 무엇인지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건축학개론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면 영화 ‘건축학개론’이 가장 먼저 등장한다. 잔잔히 깔리는 배경음악 속에서 90년대 대학생활의 감성과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오랜 갈증과 소망 끝에 한반도에 내 집을, 우리 집을 짓는다는 것은 분명 감동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꼭 완공이 되어야 하기에, 영화뿐만 아니라 딱딱한 건축학개론 교재를 펴 볼 필요가 있다. 어디선가 숫자가 나와야 하고, 법제가 나와야 하고, 조감도뿐 아니라 세밀한 단면도도 들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A학점이 나온다. 그래야 들어가서 살 사람들, 투자를 할 사람들이 마음 놓고 참여하고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다. 문과생의 건축만 가지고는 부족함이 남는다. 공대생들과 잘 어우러진 팀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그 결과물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이재승 고려대 장 모네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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