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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기술 장비 모르는 낚알못도 OK... 단순한 손맛에 빠진 도시어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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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기술 장비 모르는 낚알못도 OK... 단순한 손맛에 빠진 도시어부들

입력
2018.11.21 04:0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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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월 서해안은 주꾸미 낚시에 나선 낚시꾼으로 붐빈다. 왕태석 기자
9~11월 서해안은 주꾸미 낚시에 나선 낚시꾼으로 붐빈다. 왕태석 기자

중국 주(周)나라의 정치가 ‘강태공’은 미끼를 끼우지 않은 바늘로 낚시를 했다. 물고기가 아니라 세월을 낚기 위함이었다고 전해진다. 목적은 다르지만 지금도 미끼 없는 바늘로 하는 낚시가 유행하고 있다. 먹을 것도 없는 바늘에 걸려드는 딱한 친구는 주꾸미다. 9~11월 가을 서해안은 ‘손맛’에 매료된 도시어부들로 북적거린다. ‘봄 주꾸미, 가을 낙지’(봄에는 주꾸미가, 가을엔 낙지가 제철 음식으로 맛있다는 뜻)란 말이 있지만 산란기인 봄엔 주꾸미 낚시가 법으로 금지돼 있다. 수산자원관리법에 따라 금어기 때 주꾸미를 잡으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각오를 해야 한다.

 ‘낚알못’도 도전하는 생활낚시 

주꾸미 낚시의 매력은 단순함에 있다. 갯바위 낚시처럼 바다 멀리 낚싯줄을 던져야 하는 고난도 기술이 필요하지 않고, 장비도 비교적 간단하다. ‘낚알못(낚시를 알지 못하는 사람)’도 손쉽게 도전할 수 있어 생활낚시 성격이 강하다. 때문에 가족단위로 주말 나들이처럼 즐기는 사람이 많다. 기자가 주꾸미 낚시에 나선 지난 3일 서울에서 목적지인 인천항 연안부두로 나설 무렵 챙긴 준비물이라곤 생수 한 병과 허기를 달랠 비스킷 한 통, 햇볕을 피할 선글라스가 전부였다. 잡은 주꾸미를 담아 올 지퍼백 몇 장도 필수품이다. 복장은 동네 마트에 장을 보러 갈 법한 편안한 차림이면 된다. 주꾸미를 잡다 보면 먹물이 옷에 튈 수 있기 때문에 어두운 색깔의 옷이 제격이다. 주꾸미 낚시에 푹 빠져 개인 낚싯대를 구비할 정도의 마니아가 아니라면 보통 바닷가에 있는 낚시용품 업체에서 기본 장비를 대여할 수 있다. 통상 1만원 선에서 낚싯대를 빌릴 수 있고, 낚시업체마다 상이하지만 대략 4만원 가량(한나절 기준)의 승선료만 내면 된다.

오후 1시 인천항 근처 낚시용품점에서 기본 장비를 챙긴 뒤 연안부두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렸다. 그곳에서 만난 이도연(29)씨는 친구 2명과 함께 이날 처음 주꾸미 낚시에 도전한 초보 낚시꾼이었다. 그는 “친구들이 낚싯대를 드리우는 족족 (주꾸미가) 올라올 정도로 쉽다고 추천해줘서 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낚시를 끝마치고 귀가하던 방정민(35)씨도 “친구와 둘이서 25마리 정도 잡았다”며 “기대 이하의 성적이긴 하지만 처음 한 것 치곤 큰 어려움 없이 즐기다 올 수 있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주꾸미 낚시는 주꾸미가 있을 법한 곳으로 여러 차례 포인트를 옮겨가며 진행된다. 왕태석 기자
주꾸미 낚시는 주꾸미가 있을 법한 곳으로 여러 차례 포인트를 옮겨가며 진행된다. 왕태석 기자

40인승 낚싯배 ‘해성1호’에 탑승한 뒤 인천대교 방향으로 30여분 가량 바다로 나갔다. 18년째 주꾸미 낚싯배를 몰고 있다는 선장 조인호(73)씨는 “보통 항구로부터 4~8마일(6.5~13㎞) 정도 떨어진 해상에서 낚시를 시작한다”며 “파도가 잠잠하고 조용한 날 잘 잡히는 편”이라고 말했다. 인천대교 근처에 배가 도달하자 “낚시 준비하세요”라는 선장의 방송이 나왔다. 100m 달리기 경주에서 심판의 “레디(Ready)” 구호쯤 된다. 이윽고 “삐”하는 사이렌이 한 번 울렸다. 낚시를 시작하라는 신호였다. 배에 탑승한 낚시꾼들은 너나 없이 비장한 자세로 낚싯대 릴을 풀기 시작했다. 5분이 지났을까 여기저기서 “와” 하는 함성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주꾸미가 올라왔다. 이쯤 되면 아직 소득이 없는 사람에겐 조바심이 밀려든다.

낚시 장비는 크게 2개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낚싯대와 낚싯줄을 조절하는 릴이 한 묶음이고, 나머지는 주꾸미를 낚을 바늘에 해당하는 ‘애자’다. 애자 외에도 낚싯줄에 갑오징어 등을 함께 잡기 위한 루어(에기)를 달 수도 있다. 길이가 약 180㎝ 내외인 주꾸미 낚싯대는 릴을 포함해도 무게가 500~600g 이어서 남녀노소 누구든 장시간 들기에 부담이 없다. 낚시 줄을 풀기 위해선 릴에 달린 버튼을 꾹 누르고, 반대로 감고 싶을 땐 옆에 달린 회전 손잡이를 시계방향으로 감으면 된다. 애자는 동그란 구슬 밑에 갈고리 바늘이 사방으로 달려있는 형태인데, 주꾸미를 닮은 모양이다.

주꾸미 낚시 용품은 주꾸미를 낚을 애자(사진 가운데 둥근 구슬에 바늘)와 갑오징어 낚시용 에기(물고기 모양 모형), 추 등으로 구성된다. 왕태석 기자
주꾸미 낚시 용품은 주꾸미를 낚을 애자(사진 가운데 둥근 구슬에 바늘)와 갑오징어 낚시용 에기(물고기 모양 모형), 추 등으로 구성된다. 왕태석 기자

바닷가 뻘 속에 사는 낙지와 달리 주꾸미는 바다의 바닥이나 소라, 고둥 껍데기에 서식한다. 주꾸미 낚시는 이런 특성을 이용한다. 애자를 바다 바닥까지 내린 뒤 주꾸미가 애자에 올라타면 릴을 감아 끌어올려서 잡는 방식이다. 주꾸미가 애자에 올라가는 이유는 밝은 색 구슬을 적으로 생각하고 공격하기 위해서라고 알려져 있다. 애자를 다른 주꾸미로 착각해 짝짓기 상대로 삼는다는 설도 있다. 주의사항은 애자가 바닥에 잘 도착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점이다. 주꾸미는 물고기와 달리 바닥에 살기 때문에 바늘이 바닥에 닿지 못하면 모두 허사다. 바닥에 애자가 닿았다는 느낌이 오면 몇 초 간격으로 릴을 감았다 풀었다 반복하며 주꾸미가 올라 탔는지 점검해야 한다.

 낚시의 성패는 무게감이 좌우 

주꾸미 낚시의 핵심은 주꾸미가 애자에 걸렸을 때 무게감을 느끼는 일이다. 그 차이를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한 마리조차 못 잡을 수도, 수백 마리를 잡을 수도 있다. 인천의 낚시업체 ‘제일바다낚시’ 직원 이기환(29)씨는 “주꾸미가 걸려 있으면 릴을 감을 때 ‘물저항’이 생기는데 주꾸미가 없을 때에 비해 묵직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낚싯대 끝부분이 활처럼 휠 때도 주꾸미가 왔다는 신호다. 바닥을 훑는 낚시를 하는 탓에 애자가 바위 등에 걸려 낚싯줄이 팽팽해 지고 낚싯대가 부러질 것처럼 굽어질 때도 있다. 이 경우 초보라면 줄을 풀기 위해 애쓰기보다 과감히 끊을 필요가 있다. 주꾸미가 잡히면 ‘적당한’(여러 번 해보면 알 수 있다) 속도로 릴을 감아야 한다. 너무 빨리 감으면 주꾸미가 올라오다 떨어져 나가고, 너무 늦게 올릴 경우 도망가 버린다. 한 장소에서 10분 가까이 주꾸미가 안 잡히면 그곳은 ‘포인트(물고기가 잘 잡히는 곳)’가 아닐 수 있다. 그래서 주꾸미 낚싯배는 주기적으로 위치를 옮겨가며 낚시를 하는 편이다.

낚싯대를 기울인 지 10여분이 지났을 무렵 손에 미묘한 느낌이 왔다. 신속하지만 조심스레 릴을 감았더니 ‘히트(고기를 낚았다는 뜻)’. 성인 손바닥만한 큰놈이 걸렸다. 84일 동안 물고기 한 마리 구경 못하다가 커다란 청새치를 만난 노인만큼 반가움이 컸다. 사실 주꾸미가 잘 잡히는 시기는 11월보다 9, 10월이다. 다만 계절이 지날수록 마리 수는 줄어드는 대신 주꾸미 크기가 커지는 식이다. 월척을 노린다면 수온이 차가워 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손맛 잊지 못해 주말마다 바다로” 

주꾸미 낚시의 묘미는 손맛이다. 이날 남편 없이 홀로 주꾸미 낚시에 나온 김기수(56)씨도 “5년 째 손맛을 못 잊고 주말이면 바다로 나선다”고 말했다. 인천에 사는 김씨는 “주꾸미를 많이 잡으려면 안면도 등 충남 지방까지 가야 한다”며 “인천 앞바다는 개체 수는 적지만 수도권 접근성이 좋은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제일바다낚시 사장 이규왕(27)씨는 “성수기에 해당하는 9, 10월 주말에는 인천항에 하루 평균 1,500여명의 낚시꾼이 다녀 간다”고 말했다. 아들과 함께 주꾸미 낚시를 하러 온 최호(45)씨는 “우럭, 농어 등 물고기를 잡을 때는 하루에 많이 낚아야 몇 마리 수준이지만, 주꾸미는 잘만 하면 하루 100마리도 잡을 수 있어 지루하지 않다”고 말했다.

계절이 지나 겨울에 가까워질 수록 큰 주꾸미를 잡을 수 있다. 왕태석 기자
계절이 지나 겨울에 가까워질 수록 큰 주꾸미를 잡을 수 있다. 왕태석 기자

낚시 도중 사이렌이 두 번 울리면 해당 장소에서 다른 곳으로 배가 이동한다는 의미다. 인천 앞바다에서 10여 차례 포인트를 옮겨가며 낚시 삼매경에 빠졌더니 오후 5시가 됐다. 중간중간 그물이나 정체불명의 해양쓰레기를 낚는 바람에 계획에 없던 환경보호 활동도 했다. 몇 마리나 잡았을까 궁금해 귀항하는 배에서 주꾸미 수조를 휘저었더니 대략 10마리가 보였다. 꼭 1년 전 처음 주꾸미 낚시를 했을 때 겨우 2,3마리 잡고 씁쓸히 귀가해야 했던 것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양손 가득 들어야 할 만큼 만선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아쉽지 않았다. 뱃전에 낚싯대를 걸치는 동안 눈앞에 펼쳐졌던 푸른 물결과 수평선에 걸친 붉은 노을, 비릿한 바다내음은 하루하루 쫓기며 사는 일상에 겨를을 선사했다. 강태공만큼 망중한은 아니더라도 낚싯대를 손에 쥐고 입질을 기다리는 동안 ‘아무 것도 안 할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잡은 주꾸미로 무얼 만들어 먹을까’하는 행복한 고민은 덤이다.

인천=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주꾸미 낚시 복장은 어두운 색깔의 편안한 옷차림이 좋다. 왕태석 기자
주꾸미 낚시 복장은 어두운 색깔의 편안한 옷차림이 좋다. 왕태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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