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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국방부는 사과부터 해야 한다

입력
2018.11.15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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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6월28일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 복무제도를 도입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거기에 영향 받은 대법원은 11월1일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오승헌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1949년 병역법 제정과 함께 69년 동안 유지된 징병제에 균열을 냈다. 일부 기독교인은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 유사 종교가 사이비 교리로 신성한 국민의 의무를 유린했다는 비난을 쏟아냈다. 기독교의 초석을 놓은 초기 기독교인들은 무기를 들기보다 사자밥이 되기를 원했는데도 말이다.

1939년 일본 정부는 천황의 신격을 거부하고 병역을 거부하는 일본 내의 여호와의 증인과 대만과 조선의 여호와의 증인 신도에 대한 체포령을 내렸다. 등대사(燈臺社) 사건으로 불리는 이 조치로 조선에서는 38명이 체포되었으며, 3명은 옥사하고 33명은 해방이 돼서야 풀려났다. 등대사 사건은 정부가 편찬한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에 항일운동의 하나로 기록돼 있다. 윤수종이 엮은 ‘우리 시대의 소수자운동’(이학사,2005)에 실은 정용욱의 논문에 이 사실이 나온다.

정부와 사법계의 전향에는 해방 이후 약 1만 명의 신도를 감옥으로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여호와의 증인들의 애타는 청원이 있었다. 하지만 변화를 가져온 더 큰 원인은 한국이 1991년 유엔(UN)에 가입했으며, 유엔인권이사회가 1987년 ‘46호 결의’를 통해 회원국에 양심적 집총거부자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권고해 왔기 때문이다. 1993~2006년까지 인권위원회 위원국이면서도 유엔의 권고를 모른 채 왔던 한국이 이제와 저 결의를 수용하게 된 데에는, 그만큼 커진 한국의 국력과 국격이 거기에 맞는 옷을 맞춰 입게 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2001년 불교신자인 오태양에 이어 신앙과 관련 없는 반전평화주의 활동가들이 가세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더 이상 특정 종교의 전유물이 아니다.

유엔인권위원회는 양심적 집총거부자를 투옥해서는 안 되며, 그들의 자격을 심사하는 결정기구를 “독립적이고 불편부당”하게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또 “대체복무의 양태와 기간은 징벌의 성격”을 띠어서는 안 된다. 대체복무 기간은 현역의 1~1.4배 정도여야 하며, 대체복무 직종을 ‘3D 직종’에 국한해서도 안 된다. 조국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이 대학 교수 시절에 쓴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책세상,2001)에 이런 사실이 뻔히 씌어져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대체복무 심사기구를 국방부에 설치했으며, 복무기간은 36개월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 대체복무자를 교도소나 소방서에 합숙 형태로 복무시키겠다고 한다.

대법원 판결 직후, 여호와의 증인 입도 문의가 급증했다는 가짜 뉴스가 뜨기도 했다. 13~16살까지 여호와의 증인 신도였던 내가 해봐서 아는데, 절대 그러지 마시라고 조언해 드린다. ‘나이롱 증인’ 되기도 고역이지만, 흉내 끝에 진짜 여호와의 증인이 되어버리면 인생 종치는 거다. 유엔인권위원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경제ㆍ사회ㆍ문화ㆍ시민 또는 정치적 권리 등에서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병역거부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엄존한다. 지난 10월16일, 대한변호사협회는 집총을 거부하고 실형을 산 뒤 변호사 등록이 취소됐던 여호와의 증인 백종건 변호사의 변호사 재등록 신청을 4대5로 부결시켰다.

입영 통지를 받고 훈련소에 입소한 여호와의 증인이 훈련소에서 집총을 거부하면, ‘그래, 그럼 감옥 가’하면서 순순히 교도소에 보내 주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거기서 죽거나 죽기 직전까지 구타와 고문을 당했고, 정신병자가 되기도 했다. 국방부는 정부의 전향 결정과 국방의 의무를 사수하려는 국민 정서 사이에 호두알처럼 끼인 희생자 연기를 하면서, 자신이 저질렀던 인권유린을 묻어버리고, 대체복무의 의의마저 형태도 알아 볼 수 없게 뒤튼다. 국방부는 지난 시절 집총거부자들에게 행했던 인권유린을 백서로 만들고, 공식 사과해야 옳다. 그리고 이제는 구타나 고문 없이 교도소로 바로 보내줄테니, 여호와의 증인도 예전처럼 교도소에서 실형을 살았으면 좋겠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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