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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17년째 수동변속車 고집 “짜릿한 손맛 포기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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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17년째 수동변속車 고집 “짜릿한 손맛 포기 못해요”

입력
2018.11.14 04:40
수정
2018.11.1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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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째 수동변속기 차량(카렌스)을 운전하고 있는 유용진씨는 “운전할 때 양손을 바쁘게 움직여야 하지만 자동변속 차량에는 없는 짜릿한 손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유용진씨 제공
17년째 수동변속기 차량(카렌스)을 운전하고 있는 유용진씨는 “운전할 때 양손을 바쁘게 움직여야 하지만 자동변속 차량에는 없는 짜릿한 손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유용진씨 제공

속도는 편리함과 일맥상통한다. 걸어 다니던 사람들은 자동차와 고속철도, 비행기 등을 만나면서 빠르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됐다. 휴대폰과 컴퓨터 등 디지털화된 기기들의 등장은 불편함에 작별을 고하며 우리의 속도를 빠르게 조절하고 있다. 잠깐, 그렇다고 삶의 질이 높아졌는가. 행복감이 절로 피어나는가.

17년째 수동변속 차량 운전

“불편하다니요? 너무 재미있는 걸요!” 서울 마포구의 한 치과병원에서 일하는 유용진(38)씨는 17년 동안 일명 ‘스틱차’로 불리는 수동변속기 차량을 운전하고 있다. 그의 차량은 기아자동차 카렌스 2001년식. 차량 내부도 바뀐 게 거의 없다. 내비게이션을 장착하지 않았고, 2011년까지 카세트 옵션을 그대로 사용했다. 라틴 댄스를 즐기지 않았다면 CD플레이어도 달지 않았을 거란다. 댄스 실력이 전문가 수준인 유씨는 매주 공연 준비를 위해 수시로 음악을 들어야 했다. 카세트 테이프의 단종도 어쩔 수 없이 CD로 교체한 이유다.

얼핏 보기에도 불편한 것 투성이다. 그러나 유씨는 손사래를 친다. “예전에는 지도 책을 펼쳐놓고 길을 찾았어요. 지금은 스마트폰이 있으니까 굳이 내비게이션이 필요 없죠.”

유씨가 카렌스와 인연을 맺은 건 2001년 서울 남대문의 한 쇼핑센터 오픈 기념식 때다. 유씨의 어머니가 응모한 이벤트에서 추첨을 통해 당첨되면서 차량 소유주가 됐다. 운명이었는지 그녀는 아버지의 추천으로 1종 보통면허를 취득해 놓고 있었다. “1종 보통면허는 수동변속 트럭으로 시험을 보잖아요. 아버지께서 선견지명이 있으셨던 거 같아요.”

이때부터 유씨는 사고 한 번 내지 않고 카렌스를 몰고 있다. 17년 차 ‘스틱 차량’ 운전자인 그는 드라이브가 취미일 정도로 “운전의 맛”에 빠져 있다. 스틱 차량은 양손이 늘 바쁘게 움직이지만 손맛을 알게 되면 짜릿한 희열을 느낀단다. 기어를 1단으로 놓고 시동을 건 뒤, 속도가 20㎞로 오르면 2단, 40㎞가 되면 3단으로 바꾼다. 이때 왼발도 쉴 틈이 없다. 기어를 바꿔줄 때마다 클러치(변속기)를 밟아줘야 한다. 사람의 모든 감각이 동원되어야 하는 게 스틱 차량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씨의 친구들도 처음에는 “스틱 차량을 타는 게 무섭다”고 했다가 그의 능숙한 운전 솜씨에 반해 “베스트 드라이버”라며 엄지손가락을 세우곤 한다.

하지만 유씨는 여전히 ‘스틱 차량이 불편하지 않으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는 “운전이 아니라 세상이 빠르게 변한 점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수동변속기 여성 운전자가 1%도 안 된다고 해요. 제가 그 1% 안에 든다니 신기할 따름이에요. 그런데 운전을 아무한테 맡길 수 없더라고요.”

늦은 밤 대리운전이나 백화점 대리주차는 이제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저녁 술자리가 생겨도 스틱 차량 대리운전자를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여성 스틱 차량 대리운전자를 찾았다가 “아예 없다”는 말만 여러 차례 들었다. 이 때문에 유씨는 좋은 습관이 생겼다. 아예 술을 끊었다. 직장 동료나 친구들도 이해해주는 분위기다. 주변에 스틱 차량을 운전하는 사람도 없어서 “넌 술 안 마시지?”하고 넘어간다. 백화점 등 쇼핑센터에서도 유씨의 차량은 찬밥 신세다. 지하 주차장이 아닌 지상에 버젓이 새워져 있을 때가 많단다. “비나 눈이 오면 지하에서 올라올 때 밀릴 경우가 많아서”란다.

유씨에게 ‘혹시 차를 바꿀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글쎄요. 작은 차라면 주차는 편할 것 같다”고만 했다. ‘수동변속 차량을 계속 운전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차종을 바꾸는 것만 생각했지 수동, 자동을 바꾼다는 건 전혀 생각 못했어요. 당황스러운데요”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장항선 예산역에서 무궁화호가 진입하는 모습.
장항선 예산역에서 무궁화호가 진입하는 모습.

무궁화호 카페 객차. 한국철도공사 제공
무궁화호 카페 객차. 한국철도공사 제공

속도 줄이니 풍경과 소리가 느껴지다

일본 마이니치 신문의 후쿠오카 겐세이 기자는 불편을 실천한 적이 있다. 그의 책 ‘즐거운 불편’(2012)에는 자전거로 출퇴근하기, 외식하지 않고 도시락 갖고 다니기, 엘리베이터 타지 않기, 자판기 사용하지 않기, 직접 쌀농사 짓기 등 그가 실천한 불편함의 기록들이 담겨 있다.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심난해 할 만한 일들이다. 그러나 후쿠오카는 우리에게 진한 메시지를 남긴다. 그는 “소비 문명 때문에 잃어버린 것들 중에 더 없이 소중한 뭔가가 있었음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하고 실천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책에 담았다.

‘워킹맘’ 김선영(42)씨는 후쿠오카 기자처럼 ‘즐거운 불편’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과 함께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싣고 온양온천역을 다녀온다. 무궁화호로 용산역에서 온양온천역까지 가는 데에는 한 시간 반가량이 소요된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불편함을 즐기기에는 충분하다. 김씨는 “지정 좌석이 있는 표를 사지 않고 일부러 입석표를 산다”고 했다. 이유가 있었다. 카페객차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철도공사는 지난 1월부터 10년여간 운영하던 일명 ‘식당칸’을 개조했다. 이용 승객이 많아 복잡하던 곳을 입석 승객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좌석을 배치하고, 간이 테이블과 의자를 설치했다. 그러자 무궁화호를 이용하는 승객들의 승차 방식도 달라졌다. 창 밖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장점 덕에 입석표를 끊는 승객들이 많아졌다.

김씨도 출발역인 용산역에서 표를 사 출발시간 10~20분 전까지 열차 플랫폼으로 향한다. 이제는 익숙한 듯 아들은 4번 플랫폼에 서서 김씨를 부른다. “조금만 부지런하면 자리를 선점할 수 있다”는 게 김씨의 설명. 한 시간 반 동안 창 밖 풍경을 즐기며 아들과 책도 읽고 이야기도 나눈다. “지난 봄부터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이면 무궁화호를 타요. KTX를 이용하면 더 빠르겠지만 속도보다 여유와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져서요.”

고등학교 1학년인 박주영군은 아예 무궁화호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2년 전 가족들과 함께 부산에서 정동진까지 7시간에 걸친 열차 여행을 하고부터다. KTX의 빠른 속도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주위의 풍경과 소리에 눈이 떠졌다. 박군은 “고속열차는 직선으로 가기 위해 우리나라 지형의 특성상 터널을 뚫고 산을 깎고, 산과 산 사이에 다리는 놓아 차장 밖의 풍경이 멋이 없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느린 완행열차는 다르다”고 말했다. “바닷가가 보이는 철길이나 강을 건너는 다리에서 보이는 절경, 논밭이나 시골 마을들의 풍경 등이 너무 아름다워요. 여러 역과 지나가는 많은 종류의 열차를 볼 수 있는 것도 장점이고요.”

박군은 남들이 불편해할 소리에도 낭만이 있다고 했다. “현재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이음매를 지나며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는 구간이 있어요. 고속열차에선 느끼지 못하는 특유의 진동과 승차감도 매력적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사항일 수 있지만요.”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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