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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판사는 ‘디케’가 아니다

입력
2018.11.07 18:3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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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독립’ 시민견제로부터의 독립 아냐

고위공직자 탄핵, 역대 헌법 계승 규정

판사 탄핵 추진해 ‘주권재민’ 확인해야

대한민국 헌법 제65조는 ‘대통령ㆍ국무총리ㆍ행정 각부의 장ㆍ헌법재판소 재판관ㆍ법관ㆍ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ㆍ감사원장ㆍ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비근한 사례가 ‘촛불’ 여론을 받아들인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다.

이 조항은 탄핵 의결정족수와 심판기관만 그때그때 달랐을 뿐 제헌 헌법에서부터 면면이 이어지는 것이다. 선출직인 대통령까지 포함해 국회의 고위 공직자 탄핵소추를 헌법에 명기한 것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의 선언을 뒷받침하기 위한 장치임은 두말할 필요 없다.

그러나 헌법 제정 70년이 되도록 지금까지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사례는 10여건에 불과하다. 그중 국회가 의결한 탄핵은 대통령 두 건이 전부이고, 확정된 건 그중 하나다. 애초 탄핵소추의 대상도 검사가 대부분이었고 현재 3,000명을 넘어선 판사들 중에서는 유태흥 대법원장(1985년) 신영철 대법관(2009년) 사례가 고작이다.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의 ‘사법농단’으로 민심이 끓어오르고 있다. 법원 조직을 겨냥한 검찰 수사에 법원이 잇따른 압수수색ㆍ구속영장 기각으로 맞서는 모양새가 되자 “더 이상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없다”는 여론이 부풀어 올랐다. 법학교수 137명이 국정조사와 특별재판부 설치 및 탄핵 절차 돌입 요구 성명을 냈다. 시민단체들은 법관 6명을 지목한 ‘탄핵소추 초안’에 이어 “적폐법관 탄핵, 특별재판부 설치”를 요구하는 6,550인이 서명한 엽서를 국회에 전달했다. 적폐판사 44명과 이들에 대한 수사를 방해했다며 영장전담판사 3명의 이름과 얼굴을 표시한 ‘전국 팔도 적폐판사 지도’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공정한 재판에 대한 우려가 이처럼 넘쳐나는데 정작 당사자인 법관들은 사태의 심각함을 모르는 듯하다. 사법농단 수사 대상인 고위 법관이 ‘법원 가족’을 향해 자신에 대한 조사가 부당하다고 항변하는가 하면 전직 법관이 구속되자 그를 감싸려는 듯 갑자기 검찰 수사 관행을 꼬집고 법원이 검찰에 협조하는 조직이냐고 야단이다.

이국운 한동대 교수가 쓴 ‘법률가의 탄생’(후마니타스 발행)은 자기최면에라도 걸린 듯한 이같은 행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저자는 “한국 법률가의 탄생 공간은 자유주의적 법치주의의 규범적 요청을 전혀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책에 따르면 토론을 찾기 힘든 서울대 법대 대형 강의실은 “스스로의 인격적 통합성 위에 자신의 법적 견해를 올려놓고, 어떤 도전에도 논리적이고 인격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되기 위해 내외의 감시 체계”가 작동하는 곳이 아니다. 예비 법률가들이 스스로를 은폐한 신림동 고시원은 “고독한 책임의 공간이 아니라 무한한 방종의 공간으로 변모”될 위험을 안고 있다. 마침내 선택받은 공간인 사법연수원은 “기존 체제의 법적 판단을 효과적으로 주입하는 방면으로 집중”하는 곳으로 비친다.

지난 시절 이야기지만 그래서 오히려 지금 ‘문제 법관’을 이해하는데 더 어울릴 이런 묘사를 거론해 법관을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법관 양성 과정이 그다지 믿음직스럽지 않다는 것을, 애초 그들이 정의의 여신 ‘디케’가 아니라 판단의 한계를 숙명으로 짊어진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새삼 상기해 보자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에 동의한다면 ‘사법부 독립’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다수가 동의하는 적절한 ‘룰’을 갖춘다면 사법부조차 시민의 감시와 견제를 받는 쪽이 민주주의 정신에 부합하고 또한 정의로운 일일 것이다. 법관 탄핵 조항을 역대 헌법이 계승했다는 것은 이 제도가 사법부 독립을 훼손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에 기초한 것이다. 공정한 사법농단 재판을 위해 특별재판부도 필요하지만, 사법부 독립이 시민의 견제로부터 독립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해 줄 법관 탄핵이 더 중요하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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