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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진의 입기, 읽기] 투표 독려 티셔츠가 내심 기대되는 이유

입력
2018.11.07 04:4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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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패션 디자이너들은 옷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ㆍ사회적 견해를 표출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요즘 패션 디자이너들은 옷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ㆍ사회적 견해를 표출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중간 선거를 앞두고 몇몇 디자이너들의 ‘투표 독려’(get-out-the-vote) 활동이 이어졌다. 이번 선거는 밀레니엄 세대의 결정이 변수로 부각되는데, 이들은 패션계의 주도적인 소비자이기도 하다. 디자이너들의 정치적 발언과 행동이 밀레니엄 세대들의 선택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잭 포센, 프라발 그룽, 캐롤리나 헤레라 등 몇몇 브랜드는 선거 이슈와 관련해 티셔츠, 스카프, 가방 등을 출시했다. 하이 패션과 관련된 정치적인 뉴스도 늘어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패션계가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금기에 가까웠다.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는 무관심한 태도가 미덕이었다. 중립적이어야 어느 쪽 고객이든 옷을 팔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돈을 지불하는 고객이 될 수 있으니, 무리해서 적을 만들 필요가 없다. 물론 그 와중에도 스스럼 없이 의견을 개진하는 디자이너들이 있긴 했다.

디자이너들은 이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이민자 문제, 성 지향성 문제, 여성 문제 등 매일 사회 문제가 공론화되고 자신과 주변인의 삶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슈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빠르게 퍼져나간다. 관심이 관심을 만들어내고, 나아가 태도를 변화시킨다. 디자이너가 여러 매체를 통해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면 대중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디자이너가 개인 의견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은 역시 옷이다. 옷에 메시지를 담는 시도가 이어지면서 사람들도 입고 있는 옷에 담긴 의미를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최근엔 윤리적 생산, 정치적 태도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멋지고 트렌드한 것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 브랜드들은 먼저 나선다. 어떤 이는 “긁어 부스럼”이라지만, 요즘 시대에는 가만히 있다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느냐”는 핀잔을 듣기 쉽다. 정치적 발언이 트렌드라면,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서 고객의 환심을 사는 것도 장사의 기술이 될 수 있다.

이런 흐름으로 몇 년 전부터 캣워크 위에서 사회적ㆍ정치적 메시지가 발현되는 일이 대거 늘어났다. 패션위크 기간이 정치적 결정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고 지나친 표현은 패션의 목적을 흐릴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 구호 언급에만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캣워크 위의 메시지는 분명 이전과 확실이 달라진 변화다.

브랜드 프라발 그룽에서 제작한 '투표 독려' 티셔츠. 'VOTE'라고 써 있다. 공식 홈페이지 캡처
브랜드 프라발 그룽에서 제작한 '투표 독려' 티셔츠. 'VOTE'라고 써 있다. 공식 홈페이지 캡처

그럼에도 투표 독려 티셔츠는 낯선 면이 있다. 보통 이런 옷은 정치 단체에서 제작하거나, 지지자들이 직접 제작해 무료로 나눠준다. 판매를 하더라도 모금을 위한 취지로 저렴하게 파는 것이 보편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이제 투표 독려 티셔츠를 고급 브랜드에서 제작하고, 심지어 기존 브랜드 제품과 비슷한 가격으로 판매한다. 물론 명분은 있다. 보통 판매 수익으로 기금을 모아 비정부기구(NGO)에 기부하거나 특정한 용도로 사용한다.

이런 방식으로 돈을 사용하는 것은 자기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태도와 관심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현대인의 성향이 낳은 패션 트렌드이기도 하다. 자기가 번 돈을 어디에 쓰든 범죄나 불법이 아니라면 남이 상관할 일이 아니다. 사람마다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제품은 다양하다. 굳이 정치적 이슈와 얽히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모든 패션이 정치 이슈와 맞물리진 않는다. 모든 옷이 정치적일 수도 없고, 모든 소비자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옷을 구매하지 않는다. 그 외에도 구매를 결정하는 많은 요소들이 있다. 예를 들어 옷 제작에 있어 윤리적, 환경적 이슈도 여느 때보다 관심이 높다. 밀레니엄 세대들의 관심도 크지만, 이 흐름이 판매량으로 연결되지는 못한다. 밀레니엄 세대가 소화하기에는 친환경적인 제품이 지나치게 비싸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패션계의 변화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옷은 자신을 표현하는 창이자 도구라고 말한다. 이전까지는 그것이 감각, 센스, 취향처럼 추상적인 가치를 이미지로 구현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겉모습에 속지 않는다. 멋지게 차려 입은 무례한 사람과 어설픈 외형에도 행동으로 자신의 가치를 드높이는 이들을 구분할 수 있다. 사실 옷이 그 사람에 관해 말해주는 것은 많지 않다. 보다 직설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 하고 싶은 말을 옷에 구현해내는 이유다.

이런 변화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그 변화에 대응하며 패션은 또 어떤 방식과 방향으로 성장할 것인가. 내심 기대가 된다.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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