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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허우적대는 트럼프의 대북 정책

입력
2018.11.04 18:0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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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게 바로 미친 짓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이 명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도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 방식은 이전 정부의 모든 성과와 시도를 부정하고 전례 없는 수준으로 협상을 벌이는 것이다. 그로 인해 미국 국무장관의 임무는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으로 향하는 길을 안내하는 세르파 역할 정도로 축소되었다.

관건은 트럼프의 특이한 접근 방식이 실제 성과를 내고 있는지 여부다. 현재로선 북한의 태도 변화를 시사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물론 앞으로 몇 달 안에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이 문제에 대해서는 그 때 가서 윤곽이 보다 분명해 질 것이다.

트럼프는 구체적인 내용은 아니더라도 핵협상 기술의 핵심이나 본질에 관한 한 완전히 장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3월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이던 맥매스터와 한국 대표단 간의 회담을 중단시킨 뒤 느닷없이 김 위원장과 기꺼이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후 항상 자신만의 길을 고집하며 큰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6월 김 위원장과 첫 정상회담을 마친 뒤 그는 “더 이상 북한으로부터의 핵 위협은 없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실제 비핵화를 향한 진전은 없었다. 2017년 12월 중순 김정은은 화성 대륙간 탄도 미사일의 배치 준비를 마쳤다는 사실을 증거로 들면서 미사일 시험 프로그램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또 미사일 발사 최종 단계까지 견뎌내는 핵탄두를 개발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이에 대한 증거가 없다고 지적한다.

이 선언을 통해 김정은은 '최대의 압박'이라는 대북제재의 틀을 비군사적 수단으로 돌파하겠다는 목표와 의지를 시사했는지 모르겠다. 그는 또 북한이 핵과 핵무기를 모두 개발했다는 사실이 전세계에 알려지기를 바라면서 자신의 발언이 액면 그대로 수용되기를 기획했을 수도 있다.

이런 다양한 해석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는 김정은의 발언을 북한이 무장해제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확실한 신호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6월 정상회담 직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그의 확고한 약속을 재확인했다"는 김정은의 발언을 공개하면서 논리의 비약은 확신으로 굳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미국이 정상회담에서 얻은 것이라고는 모호성 투성이의 공동성명뿐이었다. 이에 반해 북한은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입지를 약화시키려는 목표를 향한 실질적 성과를 거뒀다. 트럼프가 갑자기 주한미군 철수를 지지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실제 한미 군사훈련을 취소하면서다.

한편으로 북한은 미국이 실제 폐쇄를 요구하지도 않은 핵실험장을 폐쇄함으로써 무작위 핵폐기 작전에 돌입했다. 이 같은 핵폐기 행보는 북한의 선량한 이미지를 강화시켜 주지만, 국가 핵 프로그램의 핵심 요소를 식별하고 제거하는 조직적 노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동시에 북한은 자신들의 핵무기가 ‘적대적’ 미국 정책에 대한 방어적 대응이라고 계속 주장하고 있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군대를 철수시키면 추가 비핵화가 뒤따를 수 있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가 비핵화를 위한 제재보다 강력한 유인책과 통합이 더 효과적이라는 견해를 수용하면서 문제는 더 복잡해지고 있다. 나아가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대화를 진행하면서 남북문제를 핵 문제에서 분리시켰다.

그럼에도 한국은 미국과 김정일 사이의 브로커 역할을 계속해 왔다. 문 대통령은 북미 대화가 난관에 부딪칠 때마다 김정은과 트럼프 모두를 ‘비행기 태우면서’ 대화를 재개하도록 중재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때는 북한이 양국에 약간 다른 언질을 제공함으로써 한미동맹에 긴장을 조성하려고 노력해 왔던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적어도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는 한미 동맹을 썩 잘 유지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많은 한국인들이 비극적 분단을 미국과 다른 외부 세력들 탓으로 돌리고 있음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문 대통령의 남북대화를 공개적으로 비난하지 않도록 조심해왔다. 문제는 남북회담이 북한에 대한 압박과 제제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이 제재 완화 가능성을 모색하기 시작한 지금은 더욱 그렇다.

마지막 핵심 플레이어는 북한 비핵화 과정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중국이다. 한국이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제를 도입하자 즉각 보복에 나섬으로써 중국은 한국민의 신뢰를 잃었고 한국 정책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마저 스스로 약화시켰다. 반면 중국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까지 몇 달 동안 김정은을 두 번 초청하고, 회담 직후에도 다시 초청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확실히 굳혔다.

모든 면에서 전임자들과 차별화를 꾀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협력하는 것보다는 갈등하는 게 쉽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한 접근은 앞으로 몇 주 또는 몇 달 안에 시험대에 오를 게 확실하다.

크리스토퍼 힐 전 주한 미국대사

[H08160279] 크리스토퍼 힐 전 주한미대사 / 김현태/2017-09-19(DB콘텐츠부)
[H08160279] 크리스토퍼 힐 전 주한미대사 / 김현태/2017-09-19(DB콘텐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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