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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의 다시 광릉 숲에서] 나무가 선물한 가을

입력
2018.10.30 11:05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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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든 오늘의 숲(국립수목원 제공)
단풍이 든 오늘의 숲(국립수목원 제공)

설악산의 첫 단풍소식이 들려온 것이 보름쯤 되었을까요. 그로부터 단풍소식은 점차 아래로 내려오며 퍼져나가 온 산야가, 도심마저도 눈 두는 곳은 어디나 “가을, 가을” 하고 있습니다. 유난히 푸른 하늘에 선명하게 돋보이는 단풍들도, 비 내리며 깊어지는 그 빛깔들도, 비바람이 떨구어 낸 낙엽들도, 그 나무들과 어우러져 한 생을 마감하고 기품있게 말라가는 온갖 풀들도 모두 이 아름다운 가을의 주인공들입니다.

얼마 전부터 페이스북을 하고 있습니다. 친구들은 아무래도 숲이나 식물에 관심을 두신 분들이 많은데, 친구들이 올린 소식들을 접하고 있노라면, 곳곳의 가을 풍광들과 시선들을 만날 수 있어서 얼마나 마음이 풍요로운지 모릅니다. 매번 감탄하며 우리나라 가을에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싶었습니다.

지난 목요일엔 국립산림과학원과 국제산림연구센터(CIFOR)가 공동으로 주관하며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등에서도 함께 참여한 ‘통합적 산림복원’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녹화성공사례를 중심으로 북한의 황폐화를 효과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자 마련한 자리였습니다. 국제사회에서도 입을 모아 대한민국은 세계 2차 세계대전 이후 국토녹화에 성공한 유일한 개발도상국이었고, 다른 나라의 좋은 모델이라고 발표를 하니 자랑스럽더라고요. 그러면서 100년 전부터 1970년대 이전 우리의 산들을 보여 주는 많은 사진들이 소개되었습니다. 수없이 들어왔고 여러 번 봐왔지만 나무 한 그루 없이 토양이 흘러내리고 있는 우리의 산의 사진들은 새삼 충격적이었습니다. 제가 지난주 내내 참으로 멋진 풍광들과 만났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도저히 같은 산야, 같은 도시의 모습이라고 연관 지을 수조차 없는 모습이었지요. 우리가 헐벗은 우리의 땅을 푸르게 만든 것은 확실히 기적이었습니다.

70년대 이전 헐벗은 숲(산림청제공)
70년대 이전 헐벗은 숲(산림청제공)

미세먼지로 온 나라가 걱정인 시대, 산소를 공급하고 공기를 정화하는 일을 비롯하여 많은 숲이 주는 공익적 가치들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나무에 단풍이 들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길을 떠나고 마음의 위로를 받으며 행복해하는가를 생각해보니, 나무가 선물한 가을 풍경의 가치는 헤아릴 수조차 없는 소중한 가치겠다 싶었습니다. 그 어떤 국민을 위한 정책이 이렇게 국민 누구나 골고루 평등하게(누리고 싶지 않은 사람 빼고) 만들어 줄 수 있을까요. 나무가 탄소를 축적하고, 우리 누구나 종이를 사용하고 나무집을 선호하며, 많은 먹거리와 치료제가 만들어진다는 유형의 가치를 빼고도 말입니다.

그날 심포지엄에서 들었던 이야기 중에 한 가지 더 인상 깊었던 것은 국민들의 참여였습니다. 지금까지 특별한 리더십으로 산림녹화가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는 많이 있어 왔지만 국제기구의 사람들은 여기에 더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지역마다 계를 만들어 말 그대로 남녀노소가 모두 참여하고 심고 가꾸었기에 가능했다는 이야기더군요. 나무를 심는 사람들 모습에는 흰 천으로 아이를 업은 아낙도, 지게를 지고 나무를 나르던 어르신도, 어린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오늘 날, 국민모두가 함께 누리는 이 가을의 행복은 그 모든 이의 노고 덕분이며 누구나가 누려야 할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빈 공간마다 나무를 심고, 심어진 나무들은 잘 가꾸어 숲속의 대한민국이 되는 것이 정말 제대로 잘 사는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보았습니다. 단풍여행이 어려우시다면 가을이 가기 전에 집 앞 공원이라도 걸어보시는 것이 공유해야 할 행복을 놓치지 않는 길입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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