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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BTS가 제시하는 지속 가능한 K팝

입력
2018.10.22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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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이 19일 저녁(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대형 공연장 아코르호텔스 아레나에서 공연하고 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방탄소년단이 19일 저녁(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대형 공연장 아코르호텔스 아레나에서 공연하고 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국내 한 아이돌 그룹 멤버가 최근 이탈리아 여행에 나섰다. 부모와 함께였다. 승용차를 대절해 관광가이드와 여행지를 돌았다. 관광을 시작하기 전 부모가 가이드에게 양해를 구했다. “우리 아이가 인기가 많아 혹 사람들이 몰려들 수 있으니 이해해주십시오”라는 말이었다. 아이돌 그룹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가이드는 “한국인 관광객이 많다 해도 설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랐다. 주요 관광지에 갈 때마다 아이돌 그룹 멤버를 알아 보고 해외 팬들이 달려들었다. 가이드는 얼떨결에 경호원 역할까지 하게 됐다. 가이드는 일을 마친 후 주변사람들에게 고생담을 전하고서야 자신이 얼마나 유명한 스타와 하루를 함께 했는지 깨달았다. 그날 손님은 방탄소년단의 한 멤버였다. 어느 가이드가 전해 준 이야기다.

방탄소년단의 인기는 뜨겁다. 그들이 어느 정도 위상인지 알게 해주는 일들이 지난해부터 줄을 잇는다. 방탄소년단은 미국 음악 전문지 빌보드의 앨범 차트 ‘빌보드 200’에 한국 가수로는 처음 정상에 올랐다. 아메리카뮤직어워즈에서 페이버릿 소셜 아티스트 상을 받았다. 유엔총회에서 세계 청소년들을 위해 연설을 했다. 미국 팝 시장의 상징과도 같은, 뉴욕 시티필드에서 4만 관객을 모으고 노래와 춤을 선보이기도 했다. 비영어권 가수에게는 높고 두꺼운 벽으로 여겨지는 그래미어워즈의 내년 무대에 오를 가능성까지 점쳐진다. 방탄소년단은 영어권, 더 정확히 말하면 미국 음악 시장에 최초로 진주한 K팝 가수다. 기성세대는 앞의 관광가이드처럼 뭐 얼마나 대단한 성취를 이루고 있냐고 반신반의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은 이미 하나의 세계적 현상이다. K팝은 방탄소년단 이전과 이후로 정의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

방탄소년단의 성공은 지극히 예외적이다. 세계적으로 유행한다지만 K팝은 비주류의 주류 정도로 인식됐다. 아시아 시장과 중남미 시장 등에서 사랑 받고 미국과 유럽 일부 음악 팬들의 지지를 받는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로봇 같은 일사불란한 동작이 매력적이기는커녕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받은 것인지를 보여주는 증거라며 혐오를 드러내는 외국인들도 적지 않다.

방탄소년단의 성공은 역설적이기도 하다. 방탄소년단이 고투 끝에 지금의 자리에 오른 과정은 K팝 산업의 어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빅히트)는 중소 가요기획사였고, 방탄소년단의 시장 진입이 쉽지 않았다. 2013년 데뷔한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활동 초기 케이블채널 여러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망가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3대 기획사 SMㆍJYPㆍYG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그룹이라면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해외 팬들이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올린 ‘고백성사’를 보면 방탄소년단의 ‘불우했던 시절’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멤버들이 스타 의식과는 거리가 멀고 해맑고 매사 긍정적이라는 것. 많은 팬들이 악조건을 이겨낸 방탄소년단의 성공기에서 자신의 희망을 찾는다.

빅히트의 방탄소년단 관리법도 예외적이다. 이성교제는 물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 한 줄 올리는 것조차 감시하고 통제하는 여느 기획사와 달리 빅히트는 방탄소년단 멤버에게 자율권을 준다. 성실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표현해내는 방탄소년단에게서 로봇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요컨대 방탄소년단은 ‘K팝의 별종’인 셈이다.

K팝 아이돌의 생명은 짧다. 국내외에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장수하지 못한다. ‘7년차 징크스’(소속사와 7년 계약이 끝난 후 그룹이 해체되는 현상)를 극복하는 경우가 드물다. 해외 유명 팝 가수와 그룹은 수십 년 넘게 활동하지만 K팝 가수는 그렇지 않다. 가수의 배우 전업은 K팝 안에서 일종의 코스가 됐다. 방탄소년단은 역시나 이례적으로 오래 활동하며 배우 활동을 굳이 하지 않아도 사랑 받는 K팝 아이돌 그룹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방탄소년단은 의도치 않게 지속 가능한 K팝의 미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라제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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