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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독일통일 전문가의 조언

입력
2018.10.24 14:01
수정
2018.10.24 14:52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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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ㆍ4선언 11주년을 기념하여 우리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한 기간 동안 베를린에서는 제8차 한독통일자문위원회가 열렸다. 이 위원회는 독일의 통일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통일부와 독일 연방내무부 공동주최로 독일 통일 20주년인 2010년부터 매년 회의를 개최 해왔다. 이번 회의에도 양 부처 차관을 대표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였다. 필자는 과거 대사 재직 시에도 참석한 바 있지만, 이번 회의는 특히 최근의 한반도 정세 변화로 인하여 더욱 진지하고 열띤 논의가 이루어졌다.

독일 측 위원들은 남북ㆍ북미관계가 지난 해 회의 때와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급변하였다고 놀라움을 표시하고,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이러한 변화를 이끈 한국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이들은 북한이 대화로 전환한 배경, 지속 가능성, 향후 전망 등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러면서 독일의 통일은 서독 정부가 추진한 동방정책과 접근을 통한 변화, 그리고 냉전종식 후 동서 간 긴장완화와 동구권 몰락을 이용한 통일외교가 초석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한국도 남북 간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는 한편, 미국 이외에 중국, 일본 등 관련국과의 협력관계도 강화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독일 통일주역 헬무트 콜 총리의 외교보좌관이었던 호르스트 텔칙 박사는 "국제정세는 매우 가변적이어서 기회가 왔다가도 곧바로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그 순간을 잘 포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모든 것은 변화 한다"는 그리스 철학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불가능할 것 같이 보이는 한반도 통일도 신념을 갖고 부단히 노력하면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전 독일 근무 때 만났던 통일 전문가들은 전승국의 승인 없이는 통일을 기할 수 없었던 전범국 독일도 통일을 달성한 만큼 한국도 반드시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당초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에도 통일까지는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불과 11개월 만에 통일이 되었다고들 했다. 통일의 기회는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올 수 있으므로 늘 사전에 대비해 두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통일을 위한 독일의 입장을 미국과 소련은 물론, 우방국이면서도 독일의 통일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영국, 프랑스 등 관련국에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반복했다는 텔칙 박사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한국도 관련국들로 하여금 '통일한국'이 '분단한국' 보다 자국의 이익에 더욱 합치된다는 인식을 갖도록 외교적 노력을 다 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한편, 동독의 마지막 총리였던 드 메지에르는 동서독 간의 다양한 인적ㆍ물적ㆍ사회적 교류가 양측 간 신뢰를 증진시켰고, 특히 동독 주민의 서독 텔레비전 시청이 이들의 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고 밝혔다. '동방정책'의 설계자인 에곤 바르 전 장관은 독일의 경험에서 보면 분단이 더 이상 작동할 수 없는 마지막 단계에서 통일이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분단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여기에 익숙해지고 당연시 할 우려가 있으므로 국민들이 항상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고 통일을 하겠다는 의지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몇 년 만에 다시 찾은 베를린은 차가운 유럽의 가을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여전히 평화롭고 안정된 모습이었다. 독일 통일 28년째, 베를린 장벽으로 상징되었던 분단의 아픔이나 상처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통일 당시 우려하였던 경제적 후유증이나 오씨(Ossi: 게으른 동독 놈들), 베씨(Wessi: 거만한 서독 놈들) 같은 동서독 주민간의 반목이나 대립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통일 후 경제는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국제적 위상도 높아져 이제는 명실상부하게 유럽을 대표하는 나라가 되었다. 우리도 언젠가 독일의 경우처럼 남북 간 평화통일을 달성하여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주도하는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차분하면서도 꾸준한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

김재신 전 주독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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