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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주의 동물에 대해 묻다] 밖이라도 땅 위의 안전한 공간을 주세요

입력
2018.10.19 16:00
수정
2018.10.19 18:54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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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군산에서 어미 개가 뜬장에서 길러지던 새끼 강아지들과 만나 핥아주고 놀아주고 있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 제공
전북 군산에서 어미 개가 뜬장에서 길러지던 새끼 강아지들과 만나 핥아주고 놀아주고 있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 제공

반려동물 인구가 1,50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펫팸족’(애완동물을 뜻하는 펫(pet)과 가족을 뜻하는 패밀리(family)의 합성어)이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 요즘,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그러나 아직도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마당이나 공장, 논밭 한 가운데에 짧은 줄에 묶여 눈비를 피할 곳도 없이 길러지는 개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는 2년 전부터 ‘시골개 1미터의 삶’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밖에서 사는 개도 마실 수 있는 물, 더위와 추위를 피할 집,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공간 등 최소한의 복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리는 캠페인이다.

전북 군산 뜬장에 있는 강아지들. 이형주 대표 제공
전북 군산 뜬장에 있는 강아지들. 이형주 대표 제공

지난달 이 캠페인의 일환으로 전북 군산의 한 마을을 찾았다. 마을에는 유독 바닥이 철조망으로 돼 동물의 발이 쑥쑥 빠지는 ‘뜬장’에서 길러지는 개들이 많았다. 뜬장은 발가락 기형뿐 아니라 관절에 무리를 가져올 수 있다. 뜬장에서 개를 키우는 마을 주민에게 뜬장을 치우고 울타리를 설치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자 ‘보기에도 좋지 않아 언젠가는 없애려고 했다’며 의외로 흔쾌히 승낙했다.

지게차가 해묵은 뜬장을 들어 내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만감이 교차했다. 뜬장 밖으로 나오는 것조차 겁내던 강아지들도 바닥에 내려놓으니 신이 나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장난을 쳤다. 뜬장 밖에 묶여 새끼들을 바라보기만 해야 했던 어미는 새끼 한 마리 한 마리의 냄새를 맡고 핥으며 놀아주었다. 뜬장을 들어낸 자리에는 목줄에 매여 살지 않을 수 있도록 울타리를 쳤다.

뜬장에서 반려견을 기르는 게 안전하다고 믿던 군산의 한 주민이 개를 처음으로 산책시키며 즐거워하고 있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 제공
뜬장에서 반려견을 기르는 게 안전하다고 믿던 군산의 한 주민이 개를 처음으로 산책시키며 즐거워하고 있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 제공

뜬장에서 길러지는 개들은 식용 목적으로 사육되는 경우가 많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염소 농장에서 멧돼지 피해를 막기 위해 진돗개를 기른다는 한 주민은 바닥에서 기르면 진드기가 옮을 수도 있고 배설물을 밟게 되기 때문에 뜬장이 안전하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설득 끝에 뜬장을 철거하는 대신 주변에 울타리를 쳐서 땅을 밟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지역이나 나이, 문화권에 따라 동물을 기르는 방법에 대한 인식 차이가 크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가 뜬장에 살다 땅을 밟게 된 호피를 안아보고 있다. 이형주 대표 제공
이형주 어웨어 대표가 뜬장에 살다 땅을 밟게 된 호피를 안아보고 있다. 이형주 대표 제공

동물보호단체에는 짧은 줄에 묶여 방치 상태로 사육되는 동물을 보고 동물학대가 아닌지 문의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지난 9월 21일부터 반려동물에게 최소한의 공간 제공 등 사육관리 의무를 위반해 상해나 질병을 유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되고 있다. 개정된 시행규칙에 따르면 실외에서 사육하는 경우에는 더위나 추위, 눈, 비,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는 휴식공간을 제공해야 하고, 바닥은 동물의 발이 빠질 수 있는 재질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변화하는 제도에 비해 시민들의 인식은 빠르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낡은 방식으로 동물을 기르던 시민이 의도치 않게 범법자가 되는 현상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지역사회가 협조해 동물보호인식을 확산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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