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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만들겠다” 아이의 꿈, 방과후 수업으로는 역부족

입력
2018.10.13 10:0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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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1전시장에서 부산시교육청이 주관하는 '2017 창의융합 페스타'가 열려 참가한 학생들이 로봇축구대결을 펼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12월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1전시장에서 부산시교육청이 주관하는 '2017 창의융합 페스타'가 열려 참가한 학생들이 로봇축구대결을 펼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초등학생인 아이의 꿈은 축구선수와 로봇과학자다. 어른이 되면 리오넬 메시나 손흥민 선수처럼 그라운드를 누비다가, 더 어른이 되면 축구하는 로봇을 만들 거란다. 자기 대신 그라운드를 누빌 로봇 선수를 직접 키워 로봇축구 대회에서 우승시키는 게 아이의 목표다. 엄마 입장에선 참 바람직한 꿈이다. 멋진 축구선수가 되려면 컴퓨터 게임보다 운동을 훨씬 더 열심히 해야 하고, 훌륭한 로봇과학자가 되려면 수학과 영어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자연스럽게 설득할 수 있다.

로봇을 만들고 싶다는 아이의 꿈은 학교 방과후 수업에서 자라났다. 처음엔 블록 조립만 하면 되는 기초 단계 로봇으로 시작해 지금은 어린이용 컴퓨터 코딩 소프트웨어로 프로그램을 짜 움직이게 만드는 단계로 올라섰다. 로봇이 복잡해지는 만큼 아이가 프로그램 갖고 낑낑대는 시간이 늘었다. 엄마와 함께 늦은 밤까지 어디가 잘못됐는지를 찾아내 로봇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걸 기어이 확인해낸 순간, 아이는 축구 결승 골이라도 넣은 양 세리머니를 하곤 했다.

그렇게 로봇을 좋아하는데 이번 학기엔 방과후 로봇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제한된 인원에 비해 신청한 학생이 많았기 때문이다. 대기 순번을 받았지만, 학기가 끝나기 전에 수업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아이의 꿈을 키워주고 싶은 마음에 해마다 열리는 학생 대상 로봇 대회를 찾아봤다. 아직 입상할 만한 실력에 미치진 못하지만, 대회에 참가하는 경험만으로도 좋은 교육이 될 거란 판단에서다.

예상대로 적잖은 대회가 올가을 예고돼 있었다. 하지만 참가 요강을 살펴보고 나니 내가 초보 엄마란 사실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참가 종목 구분 방식이 너무나 다양한 데다 대회마다 천차만별이고, 아이와 실력이 비슷한 친구를 수소문해 팀을 만들어 출전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다. 작품을 만드는데 사용할 교구나 프로그램을 몇 가지로 정해 놓는 대회도 있다. 직장 다니는 엄마가 아이와 함께 틈틈이 준비해선 도저히 엄두를 못 낼 것 같았다. 이래서 학부모들이 사교육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구나 싶었다.

하는 수 없이 집 근처 학원을 찾아봤다. 운 좋게도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로봇 학원이 있어 상담을 신청했다. 내 고민을 듣더니 원장은 웃으며 “대부분의 로봇 대회가 교사나 학원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참가하기 어려운 구조인 데다, 학교 방과후 수업에서 사용하는 교구로는 대회에서 요구하는 정도의 작품을 만들기 쉽지 않아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설명해줬다. 결국 공교육만으로 로봇을 배우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얘기다.

방과후 수업 강사로 활동하면서 별도로 로봇 학원을 운영하는 또 다른 원장은 “솔직히 방과후 수업에선 재능 있는 학생이 보여도 다른 학생들과의 형평성 때문에 심도 있는 내용을 가르치기 쉽지 않다”라고도 귀띔했다. 사정이 이러니 학교 방과후 수업은 갈수록 하향 평준화하고, 대회 출전 등 수준 높고 흥미로운 교육 기회는 학원 수강생들에게 주로 돌아가게 되는 게 현실이다.

국내 로봇 전문가들 역시 교육 현장의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공교육 체계에선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는 게 공통된 진단이다. 로봇 교육은 다른 과학 분야와 달리 산업계의 참여가 필수다. 로봇 제작에 필요한 교구와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기본 인프라로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공교육에서 로봇을 다루기 시작하면 로봇 교구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업체들 사이에 경쟁이 치열해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학교 현장에 산업계의 이권이 개입할 여지가 그만큼 커진다는 얘기다. 현재 공교육의 정보기술(IT) 인프라가 첨단 기술인 로봇 교육을 수용할 만큼 충분하지 않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전교생이 함께 쓰는 컴퓨터실 정도의 시설로는 체계적이고 연속적인 로봇 교육이 어렵다는 것이다.

로봇이 4차 산업혁명 이후 미래 기술을 이끌 분야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로봇 교육 활성화는 인재 양성뿐 아니라 관련 산업과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교육계가 로봇 교육에 소극적이니 답답한 노릇이다. 김문상 광주과학기술원(GIST) 기계공학부 교수는 “로봇은 우리나라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라며 “로봇 공교육은 정부가 의지를 갖고 정책적으로 추진해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학원을 나오면서도 아이는 벽면에 진열된 화려한 로봇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넉달 치 아파트 관리비와 맞먹는 로봇 교구 가격을 확인한 그 날부터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답 안 나오는 고민만 계속하고 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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