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커지는 '저유소' 화재 미스터리… “외국인 노동자에 모든 책임 부적절”

알림

커지는 '저유소' 화재 미스터리… “외국인 노동자에 모든 책임 부적절”

입력
2018.10.10 16:03
수정
2018.10.10 16:51
0 0
9일 오전 경기 고양경찰서에서 장종익 형사과장(왼쪽)이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과 관련된 풍등과 동일한 제품을 공개하며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전날 경찰은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과 관련해 중실화 혐의로 스리랑카인 A(27)씨를 긴급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9일 오전 경기 고양경찰서에서 장종익 형사과장(왼쪽)이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과 관련된 풍등과 동일한 제품을 공개하며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전날 경찰은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과 관련해 중실화 혐의로 스리랑카인 A(27)씨를 긴급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 고양시에서 발생한 저유소 화재사고의 원인을 놓고 의문이 커지고 있다. 경찰이 인근 공사장에서 스리랑카 노동자 A씨(27)가 날린 풍등 때문이라는 수사결과를 내놨지만, 대중은 물론 전문가도 쉽게 납득하지 못 하는 모양새다. 설령 풍등이 화재의 직접적 원인이라 해도 모든 잘못을 A씨에게 묻는 건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저유소를 관리하는 대한송유관공사의 부실대응 책임도 크다는 것이다.

10일 경찰과 전문가 의견을 종합하면, 7일 A씨가 인근 공사장에서 날린 풍등이 저유소 화재의 발단이 된 건 확실해 보인다. 경찰은 A씨가 날린 풍등이 저유소 저장탱크 옆 잔디에 떨어지며 불이 일어난 사실을 폐쇄회로(CC)TV를 통해 확인했고, 여기서 발생한 불씨가 저장탱크의 유증기 배출구로 흘러 들어가 폭발이 일어난 걸로 보고 있다.

 ◇불씨 유입인가, 열기 유입인가 

그러나 이 같은 추정엔 의문점도 있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배출구엔 인화방지망이 설치돼 있었다. 인화방지망은 탱크 안으로 불씨 등 이물질의 유입을 막는 망이다. 머리카락만큼 얇은 철선이 씨줄과 날줄처럼 꿰어져 있다. 단위는 메시(Mesh)로 표기하는데, 40메시라면 1인치(25.4㎜)짜리 정사각형 안에 40개의 그물눈이 있다는 뜻이다. 메시의 숫자가 클수록 망은 더 촘촘하다. 이번에 화재가 일어난 저장탱크에 몇 메시의 망이 설치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전문가는 망이 제대로 설치됐다면 불씨가 이를 뚫을 가능성은 사실상 ‘0%’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민간 위험물 컨설팅 대표 B씨는 1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전화 인터뷰에서 “인화방지망이 제대로 설치돼 있다면, 절대 불꽃이 들어갈 수 없다”며 “큰 동물이 쥐구멍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불씨가 아니면, 한 가지 가능성은 열기 유입이다. B씨는 “열기는 (망을) 관통할 수 있다”며 “(탱크) 안에 내부 온도를 상승시켜, 압력이 상승해 폭발한 것 같다”고 말했다.

9일 오전 경기 고양경찰서는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에 대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전날 경찰은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과 관련해 중실화 혐의로 스리랑카인 A(27)씨를 긴급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사진은 경찰이 공개한 CCTV에서 A씨가 날린 풍등이 저유소 안쪽으로 떨어지는 모습. 연합뉴스
9일 오전 경기 고양경찰서는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에 대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전날 경찰은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과 관련해 중실화 혐의로 스리랑카인 A(27)씨를 긴급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사진은 경찰이 공개한 CCTV에서 A씨가 날린 풍등이 저유소 안쪽으로 떨어지는 모습. 연합뉴스

 ◇”화재 책임, 모두 스리랑카 노동자에 묻는 건 부적절” 

화재 원인이 어떻든 화재 책임을 온전히 A씨에게 묻는 건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상당수다. 경찰에 따르면, 화재가 발생한 7일 고양 저유소에 당직 중이던 근무자는 총 6명. 이들이 풍등으로 탱크 옆 잔디에 불이 붙은 사실을 알기까지 걸린 시간은 18분이었다. 이때는 이미 불길이 크게 번진 상황이었다. 탱크 주변엔 CCTV 40여대가 설치돼 있었다. 송유관공사 직원들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지금의 대형 화재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10일 YTN라디오 ‘수도권 투데이’에서 “(이런 경우) 외국 같은 곳에선 수개월 동안 철저히 원인을 조사한다”며 “(풍등이란) 한 가지로 (화재) 원인을 규정하는 것은 정말 조심해야 할, 아주 위험한 결론”이라고 했다. B씨도 “만약 (송유관공사 직원들이) 초기에 (불길을) 발견했다면, 소화기 몇 개만으로 끌 수 있는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론은 A씨를 동정하는 쪽으로 기울어진 상황이다. 10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서 ‘스리랑카’를 검색하면 나오는 글은 약 40건이다. 대부분 노동자 A씨에게 경찰이 선처를 베풀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포털 사이트 관련 기사에도 비슷한 댓글이 쇄도하고 있다. 한 청원자는 “소방안전시설이 충분하지 못 한 것을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에게 덮어씌우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냐”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저유고 안전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A씨에 대해 엄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경찰은 A씨에게 중실화 혐의를 적용, 체포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이 반려한 상태다.

양원모 기자 ingodzon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