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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슬기로운 가짜뉴스 대처법

입력
2018.10.07 18:34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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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미국 워싱턴 D.C.의 피자가게를 향해 실탄 3발이 발사됐다. 한 20대가 소문으로 떠돌던 가게의 범죄행위를 직접 조사하겠다며 저격용 소총으로 총격을 가한 것이다. 진짜 뉴스다. 그러나 이 사건은 바로 전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 인터넷에서 번진 민주당과 아동성범죄, 피자가게를 엮은 가짜뉴스 때문이었다. 총격범은 경찰에 체포된 뒤에도 한동안 이를 진짜로 믿고 있었다. 가짜뉴스의 해악은 총질로 이어질 정도로 심각하다.

우리도 가짜뉴스의 심각성이 만만치 않다. 며칠 전 이낙연 총리는 가짜뉴스를 “사회의 공적, 민주주의 교란범”이라고 규정했다. 100% 동의한다. 가짜뉴스는 올바른 여론 형성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을 직격하는 반사회적 존재다. 이 총리는 검경이 불법적인 가짜뉴스를 신속히 수사하라고 주문했고 여당도 “가짜뉴스 예방을 위한 입법조치”를 촉구했다. 하지만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사법기관의 단속과 처벌이라는 형사적 조치는 적용이 쉽지 않고 효과 또한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형사 조치는 “뉴스의 불법성 여부를 사법당국이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렇지만 도대체 어떤 뉴스가 “불법적으로 가짜인지”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이 불분명해 법을 적용해 처벌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당장 야당은 “쓴 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것이냐”며 반발, 가짜뉴스의 사법적 규제가 곧바로 정쟁으로 비화하며 본질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다 근본적으로, 공권력의 (가짜)뉴스 불법성 규정 시도는 국가권력이 시민사회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에 개입한다는 논란으로 이어지게 된다. 아무리 선한 의지에서 출발했다 해도 형사조치를 통한 규제는 민주주의의 원칙에 대한 가장 원초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비슷한 경험이 있다. 2007년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한 뒤 대형 웹사이트는 댓글 등 이용자의 실명확인을 반드시 거쳐야 했다. 취지는 악성 댓글과 허위사실 유포 방지였지만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으로 시민사회의 저항에 부딪혔다. 그 무렵 미국에서도 온라인 댓글 등 문제는 심각해 한 기자가 백악관 관리와 인터뷰 도중 한국 사례를 언급하며 미국에서도 인터넷실명제를 도입할 수 있냐고 물었다. 이 관리의 대답은 간단했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는 표현의 자유가 있다.” 당시 미국에 거주하던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웠다. 몇 년 뒤 2012년 인터넷 실명제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정을 받아 결국 사라졌다. 자랑스러웠다.

가짜뉴스가 민주주의의 암적인 존재지만 국가권력의 표현의 자유 침해도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이 때문에 대다수 민주주의 국가들은 가짜뉴스로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쉽게 공권력이 나서서 규제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독일이 가짜뉴스의 법적 규제를 시작했다지만 불법성 정의를 증오, 혐오 관련 내용으로 제한했고 실제 규제책임을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 사업자에게 지우는 등 국가권력의 개입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미국이나 영국 등은 플랫폼 자율규제나 시민단체와의 협력에 관한 조치에 머무르고 있다.

현실적이면서도 효과적인 가짜뉴스 규제는 플랫폼 차원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가짜뉴스가 핵탄두라면 미사일은 온라인 네트워크다. 각종 정치적, 경제적 동기로 만들어진 가짜뉴스는 카카오톡, 유튜브, 페이스북 등 네트워크를 통해 미사일보다 빠른 광속으로 퍼져나가며 여론을 교란ㆍ 왜곡한다. 가짜뉴스가 더 멀리 퍼질수록 생산ㆍ유포자들은 더 많은 돈을 벌게 되고 이는 더 자극적인 가짜뉴스 생산으로 이어지는 사회악적 수익구조를 구축한다. 플랫폼의 자율적 규제로 가짜뉴스 수익 창출의 순환사슬을 끊을 수 있다면 그 해악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미국에서 가짜뉴스의 온상으로 비판받던 페이스북이 올 들어 뉴스피드 작동방식 변경 등 강도 높은 자율 규제책을 실시한 뒤 가짜뉴스 활동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소식이 나오고 있다. 민주주의 교란범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 없이 체포해야 한다.

이재국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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