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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아픈 노인을 가족으로 뒀다면

입력
2018.10.03 18:00
수정
2018.10.03 21:5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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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면 진료밖에 방법 없어 늘 아쉬워

의료영리화 프레임은 과잉 공포 조장

가치중립적으로 원격의료 따져볼 때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한번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 병원, 그리고 주치의를 바꾸기 쉽지 않다. 자신의 몸 상태를 가장 잘 아는 이를 두고 처음부터 새롭게 진단을 받아 치료를 한다는 게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해당 주치의에게 수술을 받았다면 더더욱 그렇다. 이런 경험이 있는 환자들은, 특히 먼 거리의 통원 치료를 해야 하는 이들은 한번쯤 이런 의문을 갖기 마련이다. 어차피 대면 진료를 해봐야 길어야 3,4분 증상 변화 물어보고 매번 같은 약을 처방해주는데, 이럴 바에야 전화 통화로 해도 되는 거 아냐?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라면 한밤 중 열이 펄펄 끓는 아이를 둘러업고 응급실을 찾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북적대는 환자들로 한참을 기다린 끝에 겨우 주사와 약물 처방을 받는 게 전부다. 주변에 24시간 문을 여는 응급실이 없는 시골이라면 이마저도 못해 발을 동동 구른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하다. 당직의사와 영상통화라도 하면서 아이 상태를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현재로선 이런 아쉬움을 해소할 방법은 없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끼리만 원격의료를 허용한다. 환자가 직접 의사와 화상으로 원격진료를 받는 건 불법이다. 진료를 받으려면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가 직접 병원을 찾아가야 된다는 얘기다. 허름한 보건소 하나가 전부인 외딴 섬에 사는 이들이든, 아프리카 오지에서 장기 근무 중인 이들이든 다 마찬가지다.

의사와 환자의 원격의료를 도입하자는 논의는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있었다. 박근혜 정부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럼에도 지금껏 한 발짝도 떼지 못한 건 진보 진영이 씌워놓은 ‘원격의료=의료영리화’라는 단단한 프레임 때문이었다. 정보통신기술(ICT)과 의료를 결합시킨 대기업들이 의료시장에 대거 진출해 결국에는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거라는 ‘확신’이다.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였다.

이 프레임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최악의 경우 의료영리화로 가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럴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들이 애써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원격의료는 대면진료의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라는 점이다. 아무리 뛰어난 원격의료도 대면진료보다 나을 순 없다. 원격의료가 강제가 아닌 건 두 말할 여지가 없다. 환자가 원하면 대면진료를 하면 그 뿐이다. 그럼에도 산업자본의 의료 잠식이 우려된다면 안전장치를 이중, 삼중으로 걸어두면 된다.

원격의료에 반대하는 집단은 또 있다. 그들의 밥그릇을 지키려는 의사단체다. 그들은 원격진료가 도입되면 지방 중소병원들이 줄도산할 거라고 또다른 공포를 조성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진보진영은 대기업의 이익 추구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겠다며 또 다른 이익집단인 의사들에게 기득권을 지켜주는 방패막을 쳐주고 있는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7월 하순께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런 비슷한 얘기를 했다고 한다. 당시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장관들의 전언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발언은 대충 이랬다. ‘모친이 오랜 기간 관절염 등으로 다리가 불편하시다. 완치 방법이 없으니 매번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는데 매번 똑 같은 약이다. 이런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이겠나. 이런 경우에는 환자 보호 차원에서 원격의료가 필요하지 않겠느냐.’

원격의료가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가까이 공무원들 사이에서 금기어에 가까웠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인식의 전환이다. 그날 국무회의에서 한 참석자는 ‘왜 야당 시절에 원격의료에 반대했느냐’는 질문에 머쓱해하며 “정부가 서비스산업발전에만 초점을 맞춰서 그랬다. 환자 보호라는 측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답했다고 한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언젠가 “원격의료는 영리병원과 달리 가치중립적 사안”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100% 동감한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폭염에도 한파에도 때마다 병원을 찾아야 하는 노인 환자가 있는 가족이라면 같은 생각이 아닐까 싶다. 이제 원격의료를 의료영리화라는 이념이 덧씌워진 프레임에서 놓아주고 냉철하게 득실을 판단해볼 때가 됐다.

이영태 정책사회부장 yt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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