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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서울의 변화

입력
2018.09.28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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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선 종로 3가역에 내려 다닥다닥 붙은 여관과 막걸리집들을 지나 북쪽 골목길로 들어간다. 의자 위에서도 양반다리가 편한 사람들이 모이는 연탄고깃집들이 있다. 음식점에서 버린 설거지물이 하수구를 따라 흐른다. 인구 천만 대도시의 평범한 뒷골목 풍경이다. 거리에 얽힌 기억과 사람들의 이야깃소리가 아니라면 서울의 여느 동네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더 안으로 들어가면 환한 조명과 낯선 볼거리로 가득한 공간이 갑자기 나온다. 한옥집을 개조한 칵테일 바와 디저트 가게, 신기하게 생긴 비디오 영화관, 아주 이상한 물건만 진열된 디자이너 공방 등이 좁은 골목길 양 옆에 들어섰다.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미로 같은 길을 따라 돌아다닌다. 이곳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통악기나 한복을 파는 상점이 더러 있었을 뿐, 밤이 되면 불빛조차 거의 없었던 익선동이다. 재생 과정을 거쳐 전혀 새로운 도시경험을 주는 곳으로 바뀌었다.

익선동의 새로움은 한옥 때문만이 아니다. 이곳 가게들은 커다란 유리를 통해 내부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형형색색의 물이 흐르는 실내, 오색으로 빛나는 자개장과 푹신한 스웨이드 소파, 테이블 위의 화려한 찻잔, 천장부터 내려오는 샹들리에는 조금 전 지나온 종로 3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연출한다. 심지어 레스토랑 주방까지도 훤히 들여다보이는데, 그 안의 요리사들은 유리창 바로 앞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접시를 세팅한다.

물론 발터 벤야민도 19세기 파리에서 구경거리로서의 도시를 발견했다. 그러나 익선동의 시각적 충격은 그보다 훨씬 더하다. 두세 사람 겨우 지나갈 정도로 길이 좁은 까닭에, 모두가 가게 바로 앞, 유리창만 없다면 실제로 손에 닿는 위치에서 안을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관객이 되어 영화 스크린을 들여다보듯 홀린 표정으로 가게 안을 본다. 그렇다면 가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단지 음식이나 서비스뿐 아니라 멋있게 차려 입고 자기 자신을 내보일 권리를 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기이한 감각이다.

이번에는 충무로역에 내려 본다. 서울 어디든 그렇듯 영화관이나 주유소 등이 늘어선 대로변이 나온다. 그러나 큰길을 뒤로 하고 한국의 집을 지나 오랜 역사가 있는 냉면집 앞에 다다르면 여기가 정말 서울인가 싶은 공간이 갑자기 나온다. 보행로가 이상할 정도로 편평하고 정돈된 까닭에 신발을 벗어야 할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익선동과는 정반대로 길이 뻥 뚫려 있다. 이곳은 전후 복구기에 지은 작은 창고 건물들과 기계 소리 들리는 인쇄소 사이로 용달 차량이 지나다니던 필동이다. 이곳 또한 재생을 거쳐 변하고 있다.

필동은 신선한 착시를 일으킨다. 몇몇 초소형 미술관을 제외하면 바뀐 건물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전에 알던 곳이 맞는지 자꾸 확인하게 된다. 원래 있던 건물들을 모두 떼어 다른 장소에 옮겨 심은 듯 하다. 이곳에서는 공간 개념 자체가 달라진다. 나른한 불빛을 올려 보내는 바닥은 도로라기보다는 실내의 확장판이다. 실외임에도 전통가옥의 대청마루나 호텔 복도에 가깝다고 인식하게 된다. 이 또한 전에 느껴 보지 못했던 낯선 경험이다. 공기의 냄새도 달라졌다. 아무도 거리에 침을 뱉거나 쓰레기를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 영국 여행잡지 타임아웃이 파리의 생드니 거리와 베를린의 노이쾰른을 제치고 서울 을지로 지역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힙한 곳으로 선정했다. 아직 본격적인 새 단장을 시작하지도 않은 을지로가 선정된 데는 익선동과 필동의 정확히 중간이라 두 곳 모두 걸어서 10분 남짓이면 갈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두 동네는 새로 큰 건축물을 짓거나 때려 부수지 않고도, 원래 있던 재료로써 뚜렷한 개성을 갖게 되었다. 어느 곳이나 비슷한 풍경이 이어지던 서울이 달라지고 있다.

손이상 문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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