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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사랑하니까, 퀴어문화축제

입력
2018.09.21 13:5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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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에 가장 기다리는 축제가 있다. 바로 퀴어문화축제이다. 퀴어문화축제는 올해로 19년째 접어들었다. 이제는 서울, 대구, 부산, 전주, 인천, 제주 등 전국에서 열리는 축제가 되었다. 퀴어문화축제에 가면, 성정체성에 상관없이 서로의 존재와 삶을 격려하고 지지하는 마음을 나눌 수 있다. 끼와 흥이 넘치는 사람들과 어울려 타인과 함께 살고 있다는 감각을 익히고, 연대할수록 즐거움이 커지는 기분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갈수록 축제 현장에는 이를 반대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난 9월 8일 인천 북광장에서 열렸던 퀴어문화축제에는 반퀴어활동가들이 축제 전날부터 광장을 점거하여 축제를 진행할 수 없도록 막았다. 행사준비 차량을 훼손하고, 참여자들을 고립시키기도 했다. 참여자들은 몇 시간 동안 화장실에 못 가거나 밥을 먹지도 못했다. 깃발을 빼앗거나 몸싸움을 걸기도 했다. 이는 공공장소에서 동성애 혐오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다.

반퀴어활동가들은 “사랑하니까 반대합니다”라는 피켓으로 참여자를 위협하고 “집에 가”라는 말을 서슴지 않게 외쳤다. 참여자들의 연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조건 “너네가 여기서 이러는 거 부모님이 아시냐”며 반말과 모욕적인 말을 쏟아냈다. 누가 그들에게 ‘부모’나 ‘신’과 같은 특권적 지위를 부여한 것도 아닌데 그들은 ‘올바른 길로 엇나간 어린 자녀를 인도하는 것이 자신(어른)의 도리’라고 믿으며 행동한다. 하지만 아무리 ‘사랑’을 내세우더라도 혐오와 차별은 명백한 폭력이며, 타인을 동등한 존재나 시민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들에게 사랑의 자리는 들어설 수 없다.

존재는 찬반의 영역으로 판단하거나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정체성이나 퀴어문화축제 자체가 찬반의 논쟁거리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사랑하니까 반대합니다”는 말의 이면에는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 이들에게 집(사적 영역)으로 돌아가서 세상 밖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말고 침묵하라는 의미가 숨어있다. 존재를 부정하고, 공론의 장에서 지우려는 것이 폭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러한 경향은 최근 한국 개신교 진영이나 대학에서 일어나는 반동성애 움직임에서도 빈번하게 목격된다. 대학에서 성소수자 강연을 기획했다고 해서, 채플실에서 무지개색 티셔츠를 입었다고 해서, 학생들을 징계했다. 또한 성소수자를 지지하고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 목사를 이단으로 공표하거나, 특정 신학대학원에는 입학할 때 동성애 반대 서약을 의무화하고 있다. 모두 지난 1년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다.

문화연구자 시우는 저서 ‘퀴어 아포칼립스’에서, 오늘날 한국 개신교 내 반퀴어운동은 정치영역에서 다뤄져야 할 인권차별금지가 종교차별이라는 종교영역으로 전치되어 일어나고 있다고 보았다. 그랬을 때, 인권에 대한 차별은 종교에 대한 차별 문제로 둔갑하여 반퀴어활동가에게 종교차별에 맞서는 결단과 확신을 갖게 한다. 반퀴어운동은 교단 내에서 사회적 공포를 조장하고, 동시에 구성원들을 결속하는 효과를 일으킨다. 물론 내부에 이미 존재하는 퀴어를 소외시키고 검열하기도 한다. 퀴어문화축제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무엇이 이 사회와 집단을 폐쇄적으로 사고하게 만들고, 확장의 가능성을 가로막는지 성찰하는 것인데 그마저도 자기결집의 기제로 작동하는 것이다.

오는 9월 29일 제주에서 제2회 퀴어문화축제가 열릴 예정인데 벌써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어렵게 한 걸음씩 내디뎠던 것처럼, 행진은 계속되어야 한다. 성경에도 적혀있지 않은가.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편 133:1) 사랑하니까, 퀴어문화축제는 계속되어야 한다.

천주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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