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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의 우충좌돌] 똘똘한 한 채, 왜 폭탄인가

입력
2018.09.18 18:5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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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가 1주택 보유 진보 진영 기득권자들 

 차별화 조장과 가격폭등 구조에서 수혜 

 이들의 개혁저항에 눈치 보는 진보정부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교육과 부동산에서 진보를 내세운 행정부의 무능이 두드러진다. 왜 이런가? 진보적이었던 노무현 정부도 두 영역에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수능평가를 9등급으로 한다는 좋은 정책을 내놓았지만, 너무 늦었다.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정권 말기인 2008년이었고, 이명박 정부는 1년 만에 그 정책을 폐기했다. 부동산정책에선 김근태 우리당 의장이 계급장 떼고 대통령과 한 판 하자고 했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지금 다시 그 역사가 반복되는 것일까? 교육개혁 공약이었던 수능 절대평가는 간 데 없이 사라져버렸고, 서울 및 일부 지방 부동산 가격은 폭등하고 있다.

당시 부동산 담당 비서관이 지금 청와대 수석이고 이전의 교육수석도 다시 입시개혁을 맡고 있지만, 그들이 개혁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냐는 물음은 일단 옆으로 밀어두자. 다만, 행정부가 진보적인 정책을 실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말로는 진보를 내세웠던 행정부가 실제로는 우유부단하다고 일단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까닭이 무얼까? 정부가 진보적인 정책을 실행하지 못하게 막는 사람들이 있고, 정부는 이들 눈치를 본다고 할 수 있다. 대학입시와 부동산 문제에서 기득권을 고수하면서 개혁에 저항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여기엔 보수만 속하지 않는다. 정부 고위 인사들을 포함해 자칭 진보라는 사람 상당수가 강남에 거주하고, 더 나아가 2주택 소유자다. 이들은 일반적으론 진보를 내세울지 몰라도, 자신과 직접 관련 있는 교육과 부동산에서는 기득권자들이며, 따라서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클 수 있다. 그냥 짐작이 아니다. 장하성 정책실장이 강남에 대해 발언한 말을 보면, 그들이 최소한 여기서 얼마나 진보적이지 않은지 알 수 있다. 결국 진보 내부에도 진보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는 셈이다. 이 상태에서 진보가 보수의 반대 탓만 한다면, ‘진보’는 크게 신뢰를 잃을 것이다.

그럼 이번 9ㆍ13 부동산 대책은 충분한가? 2주택 이상 사람들의 투기를 막을 대책이 제법 나왔으니, 늦었더라도 다행일까? 그러나 행정부는 여전히 2주택 이상 소유자가 주로 부동산 문제를 유발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2주택 이상이 주택 공급을 교란시키는 것은 맞다, 그러나 ‘똘똘한 한 채’의 가격을 올리려는 흐름이 그 못지않게 점점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것에 대한 대책이 너무 약하다. 고가 1주택을 소유한 사람들도 가격 급등을 반영한 세금을 부담해야 하건만, 억 소리 나게 오른 시가 18억 1주택자의 세금 부담이 ‘겨우’ 10만원 늘어난다?

물론 1주택이 2주택 이상처럼 투기를 부추긴다고 할 수는 없지만, 2주택 이상은 투기이고 1주택은 전혀 책임이 없는 것도 아니다. 똘똘한 한 채가 비정상적인 가격 폭등을 유발하는 새로운 요인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똘똘한 수능 점수에 매달리는 학생들이 1~2점 차이로 대학 순위를 차별적으로 평가하듯이, 똘똘한 한 채를 가진 사람들도 부동산에 평점을 매기며 차별화를 조장한다. 등급화 사회의 폭력과 맞물리는 순간 똘똘한 하나는 차별적 폭력을 연쇄적으로 폭발시킨다.

그렇지만 폭력적 등급화가 이미 상당히 진행된 사회에서 똘똘한 한 채와 똘똘한 점수 하나에 매달리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경향도 인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어느 정도는 그렇다. 적어도 그것을 쉽게 뿌리 뽑기는 어려울 것이다. 강남 가격이 폭등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은 초연하기를 바랄 순 없다. 이미 올랐던 강남이 또 오르면, 다른 곳도 따라서 오르려고 할 터이다. 차별적 등급화가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진보 내부의 ‘강남스타일’ 2주택도 진보에 장애물이지만, 똘똘한 한 채들도 마찬가지다. 똘똘한 한 채의 숫자가 너무 늘어나 거품이 부글부글해도 문제고, 거꾸로 지방엔 그것이 너무 없어도 문제다. 위태롭게 균형을 잡는 일만 남을 때, 진보 정책은 실행하기 어려워진다.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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