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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칼럼] 문 대통령의 평양 가는 길

입력
2018.09.17 18:3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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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 주변 4대 열강의 치열한 세력 다툼 

 남북 스스로 비핵화-평화구축 돌파구 내야 

 제2의 도보다리 회담, 민족 운명 고민하길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7일 서울도서관에 걸린 남북정상회담 성공 기원 대형 플래카드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7일 서울도서관에 걸린 남북정상회담 성공 기원 대형 플래카드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근대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각축전은 크게 세 차례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이은 일제 강점이 1차고,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 발발이 2차다. 3차는 북한 핵이 촉발한 한반도 위기 국면에서의 세력 다툼이다. 미ㆍ중ㆍ러ㆍ일 등 주변 4대 열강 모두 자국 이익을 위해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게 공통점이다.

국내에선 별로 주목하지 않았지만 지난주 러시아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은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치열한 외교전을 단적으로 보여 줬다. 한반도 바로 위인 블라디보스토크라는 장소의 상징성도 그렇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뺀 3강의 스트롱맨들이 한자리에 모여 머리를 맞댔다는 것만으로도 예사롭지 않다. 대미 견제라는 공동의 이해관계 외에 한반도 관련 문제가 주요 관심사에 올랐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미국이 최근 북핵 문제를 중국과의 패권 경쟁 구도에 엮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열강들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 요건은 한반도 문제를 우리에게만 맡겨놓지 않는다. 민족의 운명과 직결된 북핵 사태도 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과거와 다른 건 우리 스스로의 위기 해결 역량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는 점이다. 군사력과 경제력 등 국력이 커졌고 남북 간 신뢰와 분단체제 폐해에 대한 공감대도 넓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8ㆍ15 경축사에서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인이라는 인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 발언은 남북의 주도적 접근을 강조한 것이다.

18일부터 평양에서 열리는 3차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한이 대화와 협상으로 한반도의 첨예한 현안을 풀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라는 의미가 있다. 교착상태에 빠진 비핵화 문제의 물꼬를 트고 남북관계 가속의 전기가 마련될지, 아니면 또다시 암울한 국면이 계속될지 판가름 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다행히 ‘비핵화 진전을 위한 남북협력 방안’이 회담의 주요 의제에 올려져 있어 기대감을 높인다. 비핵화는 미국과의 문제라며 정부와 실질적 대화를 외면해 온 그간의 북한 태도를 고려하면 긍정적인 신호다.

비핵화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왜 국제사회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안 믿는지 답답하다”고 했다고 한다. 경제 집중 노선으로 국가방침을 전환하고 핵실험장과 미사일 엔진시험장을 폐기했는데도 여전히 의심하고 있으니 갑갑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동안 번번이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깨뜨려 신뢰를 잃은 것은 북한 책임이다. 미국 등 국제사회의 비핵화 회의론을 불식시키려면 북한이 더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간도 김 위원장의 편이 아니다. 정치적 곤경에 놓인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에 목을 매고 있다. 밥 우드워드의 신간 ‘공포’에서 드러났듯이 트럼프가 중간선거에 패하면 무슨 일을 벌일지 예측하기 어렵다. “북한은 트럼프를 ‘정의의 사도’로 여기고 있다”는 미국 언론 ‘슬레이트’의 보도대로라면 지금이 천재일우의 기회임을 북한도 알고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수석협상가’ 역할을 부여받은 문 대통령의 어깨는 무겁다. 고비마다 경색된 북미관계를 되돌리는 데 기여한 문 대통령은 이번엔 비핵화의 가시적 조치를 이끌어 내야 하는 막중한 책무를 떠안았다. 단순한 ‘중재자’가 아니라 핵신고서 제출과 종전선언의 주고받기 계획을 얼마나 정치하게 구성해 북미 간 접점을 찾도록 하느냐가 관건이다.

지난 4월 판문점 1차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극적인 도보다리 회담을 연출했다. 그때 쌓인 서로간의 믿음이 남북과 북미관계를 견인해 온 밑거름이 됐다. 평양 정상회담은 통상의 정상회담과 달리 일정이 사전에 확정되지 않고 유동적이다. 제2의 도보다리 회담이 만들어질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셈이다. 남북 최고지도자가 한반도와 민족의 운명을 놓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눈다면 의외의 성과를 이뤄 낼 수 있다. 지금 한반도는 평화와 공존, 냉전과 대립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것을 두 지도자는 명심해야 한다.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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