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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그때 알았더라면… 지금은 늦을까

입력
2018.09.1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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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1만원 공약’ 후폭풍 대선때 예고

집권 후 ‘정책거버넌스’ 방치해 소란 자초

“국정은 신념보다 책임 문제”, 신뢰 찾아야

문재인 대통령과 김명수 대법원장이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중앙홀에서 열린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법원 청사 합창단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명수 대법원장이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중앙홀에서 열린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법원 청사 합창단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이 확실시되던 지난해 4월 말, 캠프 내 유력 관계자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승리가 눈앞이지만 축배의 시간은 짧고 고민의 시간이 길어질 것 같다. 내년 지방선거가 벌써 걱정된다.” 그가 화근으로 생각한 것은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시대’ 공약이었다. 약속을 실천하려면 노동계 요구대로 최저임금을 매년 15% 이상씩 3년 연속 올려야 하는데, 그 부담을 직격탄으로 맞는 소상공인과 영세자영업자들이 감내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공약을 피해 가면 노동계 등 지지층의 배신감이 하늘을 찌를 것이고.

필자는 선거 직전 이 얘기를 칼럼으로 쓴 데 이어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재차 최저임금 문제에 대한 폭넓고 디테일한 접근을 요구하는 글을 썼다. 문 대통령이 취임과 함께 파격적인 사이다 행보로 국민 가슴을 뚫어준 서생의 문제의식으로는 부족하며, 진짜 실력은 세밀한 정책 로드맵과 선후ㆍ완급ㆍ강약을 조절하는 상인의 현실 감각에서 드러나는데, 첫 시험대가 최저임금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다음은 그 일부다 “과거 정부에서 최저임금 인상률이 한 자릿수로 제한적이었던 것은 적용 대상 근로자의 82%가 3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 즉 지불 능력이 부족한 사업장에 근무하기 때문이다. 국내 자영업자의 52%는 연평균 매출이 4,600만원 이하이고 월소득은 187만원 수준이어서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 1만원은 내가 노동자가 될 것인지 사용자가 될 것인지를 가름하는 변곡점’이라고 말한다. 국가 지도자의 약속은 무겁게 여겨야 하지만 신념윤리보다 책임윤리가 우선인 대통령의 눈이 후보의 눈과 같을 수 없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려면 지지자들을 설득하고 때론 매를 감수하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

새 정부의 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난해 7월 15일 새벽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도 깜짝 놀란’ 16.4% 인상안을 통과시키고 문 대통령이 “1만원 시대로 가는 청신호이자 소득주도성장으로 가는 대전환점”이라고 반긴 후 또 글을 썼다. 새 정부 출범 전후 최저임금을 주제로 잇달아 글을 쓴 것은 캠프 관계자의 얘기에 유의해 진행 상황을 눈여겨봤기 때문이다. 세번째 글에서 필자는 “정부가 뒷감당하지 못할 일을 저질렀지만, 대선에서 모든 후보가 목표 연도만 달리한 채 1만원 고지를 가야할 곳으로 약속했다면 큰 걸음으로 가는 게 맞다”고 했다. 끝은 “익숙하지 않은 속도로 인해 폐업과 해고 등 이른바 ‘시장의 역설’ 문제가 생길 것인 만큼 사회 전체가 그몫을 나눠지면서 새로운 균형, 즉 ‘뉴 노멀’을 찾아야 한다”고 맺었다.

다시 캠프 관계자로 돌아가면, 그의 얘기는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최저임금이 정권의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라는 지적은 적확했으되 지방선거는 그 영향을 벗어나 여권이 압승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의 불길한 예언은 최저임금위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또 두 자릿수인 10.9% 올림으로써 현실화됐고, 2020년 21대 총선이 여권의 악몽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심심찮게 나온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정권에서 고용ㆍ분배ㆍ실업ㆍ성장에 ‘쇼크’가 따라붙는 통계가 일상화하고, 소상공인과 영세사업자 수만 명이 불복종 시위를 벌이는 상황이니 문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3개월 새 30%포인트 이상 빠져 40%대로 추락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지나간 얘기를 길게 한 것은 문 정부가 정권의 정체성과 직결된 최저임금 과속 인상을 추진하면서 부작용과 후폭풍을 최소화하는 대책을 병행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정책 설계ㆍ점검ㆍ실행ㆍ평가의 전 과정을 관리하는 이른바 ‘정책 거버넌스’를 소홀히 해 화를 자초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이 대목을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눈감았다면 무책임한 것이다.

정책 실패보다 더 두려운 것은 고집과 집착에 따른 신뢰 상실이다. 부동산 대란까지 겹친 상황이 어렵고 안팎 비판이 거셀수록 솔직하고 투명하게 문제에 다가가야 한다. 신념만큼 책임도 중요하니 말이다. 진작에 잘 대처했으면 좋았겠지만 지금도 늦지 않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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