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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칼럼] 20년 집권론, 가시밭 위의 꿈

입력
2018.09.03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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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취임 후 민주당 핵심목표 부상

문재인 정부 가시적 성과 내는 게 우선

살얼음판 같은 정국 겸손하고 조심해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에서 두번째) 등 당 지도부가 1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을 방문, 권양숙 여사 예방을 마친 후 지지자를 향해 손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에서 두번째) 등 당 지도부가 1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을 방문, 권양숙 여사 예방을 마친 후 지지자를 향해 손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보진영에서 ‘진보 장기집권론’이 제기된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개혁 정책의 잇단 폐기 등 민주주의의 퇴행에 대한 반작용 성격이 컸다. “탈권위주의의 새로운 정치를 펴려 했는데 임기가 5년으로 끝나니까 아무 것도 못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그때 “진보ㆍ개혁진영이 집권하면 이후 10년은 연속해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진보집권플랜’) 하지만 이런 목소리가 구체적 전략이나 담론의 수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살얼음판 같은 국면에서 진보세력의 자기 보존조차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동안 수면 아래 있던 진보 장기집권론이 다시 거론된 것은 지난해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될 즈음부터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적어도 4,5번 계속 집권해야 정책이 뿌리내리는 것이고, 오랜만에 집권했는데 계속 집권해야 한다”고 했고, 추미애 당시 민주당 대표도 “최소 20년 이상의 연속집권을 목표로 하겠다”고 밝혔다. 며칠 전 열린 민주당 워크숍에서도 ‘2022년 재집권’ ‘민주당 20년 집권론’ 등의 다짐이 쏟아졌다. 집권 1년 여 만에 ‘20년 집권론’이 여당의 핵심강령과 목표로 자리잡은 것이다.

경선 공약으로 장기집권론을 내건 이 의원의 대표 당선은 그 청사진에 날개가 달린 격이다. 이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민주정부 20년 집권 플랜 테스크포스(TF)’를 조만간 구성하겠다고 공언했다. 첫 현장 최고회의 장소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구미시를 택한 것은 그런 구상의 서막인 셈이다. 내후년 총선에서 의미 있는 TK 의석을 확보해야 민주당이 전국정당으로 자리매김하고 장기집권의 길이 열린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 동반추락에서 나타나듯 지금 국민들은 현 정권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경기둔화와 고용부진 등 먹고 살기가 어려워진데다 부동산, 교육 등 민생정책 헛발질로 화가 많이 난 상태다. 이런 마당에 대놓고 ‘20년 집권’ 운운하는 것은 국민들의 분노지수만 높일 뿐이다. 자칫 오만하다는 인상을 주기 십상이다.

특정 정권이나 정당의 장기집권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도 부정적이다. 굳이 독재와 인권탄압으로 장기집권을 한 박정희 시대까지 갈 것도 없이 박근혜 정권에서도 그런 기도가 있었다. 세월호 참사 등으로 국민이 등을 돌리자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통한 새누리당의 장기집권 음모가 구체화됐다. 민심과 동떨어진 정략은 정권의 몰락을 앞당기는 자충수가 됐다.

정권의 연속집권은 국정운영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지 전략과 플랜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논란은 있지만 일본 자민당이 장기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정치적 유연함과 개혁 작업, 당내 파벌간 견제 등으로 신뢰와 지지를 얻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상황이 달라졌지만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44년 집권은 “정부가 안락한 가정을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의 실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진보의 장기집권은 보수의 퇴조를 뜻한다. 이 대표는 “극우 보수세력을 완전히 궤멸시켜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고 이영희 교수가 책에서 썼듯이 “진보의 날개만으로는 안정이 없고 보수의 날개만으로는 앞으로 갈 수 없”는 법이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견제와 균형은 민주주의 발전의 원동력이다. 보수궤멸에 기댄 장기집권은 바람직한 모델이라고 할 수 없다.

지금은 정부와 여당이 성과를 내야 할 시기다.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장기집권은커녕 다음 대선도 어렵다. 참여정부 시절 열린우리당은 “100년 넘는 성공한 정당을 만들자”고 했지만 3년여 만에 깃발을 내려야 했다. 2012년 대선에서 패했을 때 민주당에선 “상당히 오랜 기간 집권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비관론이 팽배했다. 그때 “왜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했는지”를 반성하고 새로 시작하자는 다짐이 많았다. 민주당은 벌써 그때의 간절함을 잊은 듯하다.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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