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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정적(靜寂)] 동반(同伴)

입력
2018.08.27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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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낯선 존재가 집에 접근하는지 본능적으로 안다. 개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한 밤중에도, 귀를 쫑긋 세워, 정원 구석에서 개구리나 다람쥐가 움직이는 미세한 소리에도 반응한다. 나는 아내와 세 마리 반려견과 함께 시골에 산다. 6년 전 내 삶에 들어온 진돗개 두 마리와 2년 전 동네 시장에서 돌아다니던 유기견 한 마리가 내 삶의 동반자가 됐다. 나는 진돗개 두 마리에게 ‘샤갈’과 ‘벨라’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화가 샤갈과 그의 아내 벨라는 나의 성서연구에 영감을 준 것처럼, 샤갈과 벨라는 내 삶의 조련사자 안내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골방으로 들어가 하얀 방석에 좌정한다. 나는 가만히 앉아, 오늘 내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생각, 말, 그리고 일들을 상상하고, 숙고하여 가려낸 후, 그것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내가 눈을 뜨면, 옆에서 샤갈과 벨라가 명상하고 있다. 이들의 표정이나 몸가짐은 언제나 군더더기가 없어 존엄하다. 그들은 눈과 온 몸으로 나에게 명령한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조깅하세요!’ 어떤 아침은 피곤하고, 어떤 아침은 신문기고 글을 탈고하지 못해 불안하다. 아니 매일 매일 조깅을 피할 수 있는 수많은 이유가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반려견들의 요구는 절대적이다. 이들의 요구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나를 변화시켰다. 조깅이 나의 종교라면서, 내 반려견들은 그 종교를 가르치는 사제들이다.

언제부터 인류는 개와 동행(同行)하기 시작했는가? 쇼베와 다른 두명의 친구들이 1994년 12월, 프랑스 남부 아르데슈현에서 구석기 시대 동굴을 발견했다. 쇼베동굴이다. 고고학자들은 늑대가 개로 사육된 시기를 기원전 1만5,000년전으로 잡았다. 그러나 쇼베동굴 안에 남겨진 발자국들은 인간과 늑대의 공존이 적어도 기원전 3만2,000년 이전이란 사실을 증명한다. 쇼베동굴은 지금까지 발견된 구석기 시대 동굴들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 동굴은 인류가 특별한 의례를 위해 들어와 벽화를 그리고 노래와 춤을 추고, 의식을 치르던 구석기시대 ‘시스틴성당’이다.

여기엔 특별한 발자국들이 있다. 한쪽은 8~9세 정도의 소년, 소녀로 보이는 아이 발자국이고 다른 한쪽은 늑대 발자국이다. 이들은 정상적 걸음으로 함께 걷고 있다. 이들이 뛴 흔적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쪽도 공포를 느끼거나 누구를 공격할 생각이 없다. 이들이 동시대에 함께 걸었다는 결정적 이유는 이들의 발자국들이 겹치지 않고 가지런히 수십미터 지속됐기 때문이다. 인류는 아마도 4만년전부터 늑대를 사육해 오늘날 우리가 아는 개로 진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인류는 수십미터 빙하로 덮인 유럽에서 생존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늑대들이 먹을 것을 찾아 모닥불이 켜있는 인류의 거주지로 내려왔다. 인류는 늑대에게 먹을 것을 주고 공생(共生)하기 시작했다. 늑대가 개로 사육되면서 인류의 거주지를 지키는 보호자가 됐다. 인류는 비로소 밤에 편히 잘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인류는 사육된 사냥개와 함께 매머드, 야생들소 같은 거대 몸집을 지닌 짐승들을 전략적으로 사냥하는 생존의 동반자가 됐다. 인류는 다른 동물을 사냥하고 유럽에 있던 네안데르탈인이나 러시아 지역 데니소바인들과 경쟁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주는 반려견을 통해, 지하동굴로 내려가 자신을 심오하게 관찰하는 예술을 발명했다. 인류는 이제 다른 동물과 경쟁하는 ‘호모사피엔스’에서 자신의 내면을 살피는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됐다.

철학자 피터 싱어(1946년~)는 1975년 ‘동물해방’이란 책에서 인간이 다른 동물을 대하는 방식에 관해 기술했다. 그는 옥스퍼드대 심리학자 리차드 라이더의 ‘종차별주의(種差別主義)’란 개념을 원용해, 인간이라는 종(種)이 자신과는 다른 종에 속하는 동물들, 예를 들어, 개 고양이 소 염소 원숭이 같은 동물들을 차별하고 학대하는 것은 비도덕적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자신이 속하지 않는 다른 개체 종의 행복을 존중해야할 만큼 정신적으로 진화했다. 다른 동물들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은 그들의 고통을 줄이는 노력에서 시작한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결정짓는 기준은 지적 능력이 아니라, 고통을 감지하는 능력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에 대해 고통을 가하는 행위는 비도덕적이다. 그런 행위는 최근 시골에 있는 70대 할아버지가 30대 정신지체 여성을 수년간 성폭행하는 것이나, 종교사제들이 아동들을 성폭행하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비윤리적이다.

인격의 완성인 자비(慈悲)의 시선의 출발점은 내가 아닌 상대방이다.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헤아려, 그런 환경을 만들려는 마음이 ‘자비’이며, 상대방이 슬플 때 같이 슬퍼할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슬퍼하거나 고통을 느끼지 않을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자비’다. 인류는 이제 도덕과 윤리를 동물과 식물에 적용시킬 정도로 진화했다. 당신은 이웃의 고통을 감지할 능력이 있습니까? 당신은 동물의 고통을 덜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습니까?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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