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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2016년 미국과 한국은 달랐을까.

입력
2018.08.14 19: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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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국과 B국 두 나라는 냉전시대 경쟁국이었다. 1960년대에는 오히려 앞서 가는 듯 했던 체제경쟁에서 B국은 1990년대 완패했다. 1990년대 큰 혼란이 닥쳐 수많은 국민이 고난을 겪었으나, 체제 붕괴 사태는 가까스로 면했다. 어려운 경제 여건에도 불구, 이후 냉전시대 쌓은 무기산업 기반 및 핵무기 개발로 군사ㆍ안보적으로는 A국과 맞설 수 있는 실력을 회복했다. 급기야 수년 전에는 외교ㆍ안보적으로 대형 도발을 감행했지만, A국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

정적과 배신자를 독극물로 암살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 B국의 권위주의 지도자는 A국의 한 여성 정치인을 증오했다. 이 여성 정치인은 체제경쟁 당시 A국을 이끈 대통령의 가까운 인척이었는데, B국과 그 지도자에 대해 강경 입장을 고수했다.

그런 두 나라에 2016년은 양국 관계의 분수령이 되는 시기가 됐다. B국 지도자가 A국 여성 정치인에 복수할 기회가 찾아왔다. B국은 진보ㆍ보수 대립이 심한 A국에 대해 인터넷 여론조작 공격을 벌이는 한편, 여성 정치인의 반대세력을 지원하는 공작을 벌였다. 그 덕분일까. 여성 정치인의 정치적 라이벌이자, 평소 B국과의 관계개선을 주장했던 인물이 A국 대통령이 됐다.

정권이 새 대통령에 넘어가기 직전, A국 정보기관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B국 지도자 지시에 따라 이뤄진 공작은 오랜 기간 치밀하게 준비됐다. A국 비밀정보를 대량 유출시킨 인물과 협력관계를 구축했고, 2015년 이후에는 A국 고위 관계자들의 자료를 해킹했다. B국은 ‘댓글부대’를 이용한 여론전도 펼쳤다. 양국간 긴장이 심화했을 때 동원됐던 SNS계정이 2015년 이후 A국의 여성 정치인을 공격하고, 지금 대통령에 대한 지지 여론을 확산시키는데 사용됐다. 2017년 대통령에 오른 A국 대통령은 전임 정권 시절부터 B국의 공작을 수사하던 정보기관 수장을 ‘충성심이 없다’ 이유로 해임했다.

B국의 공작이 성공한 건 A국 내부에서 여성 정치인에 대한 반감이 컸기 때문이기도 했다. 특히 ‘퍼스트레이디’일 때부터 인연을 맺어온 측근 여성과 연루된 스캔들은 국민들의 분노를 자극하는데 이용됐다. 여비서의 전 남편까지 얽힌 루머는 지지율 하락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한국일보 독자라면 ‘A=미국, B=러시아’라는 걸 당연히 아실 것이다. 물론 ‘우리 나라 얘기를 한 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면, 정답은 아니지만 크게 틀린 건 아니다. 러시아가 2014년 크림 반도를 합병했을 때 미국이 당했던 것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물리치는 과정이 한국에서 벌어진 일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특히 클린턴의 최측근 여비서(후마 애버딘)가 개입된 이메일 파동은 한국의 ‘최순실 스캔들’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2016년 특파원으로 워싱턴에 있을 때도 그랬고, 한국에 돌아와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을 기사로 다룰 때마다 떠나지 않는 의문이 있다.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 한국에서는 벌어지지 않았을까’이다.

미국에서는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해임됐지만, 러시아의 공작을 파헤치는 수사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미 사법당국은 선거 결과는 인정하되, 러시아 개입이 미국 선거의 순수성을 훼손시켰다는 걸 수사의 명분으로 삼고 있다.

한국에서는 ‘드루킹 특검’이 진행되고 있지만, 2016년 온라인 공간에서 당시 공권력을 포함해 다양한 세력이 얽힌 대결 상황에 대해서는 명확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개인이나 단체, 조직, 제3국이 여론 조작에 개입했다면, 결과와 상관없이 선거 순수성을 훼손한 게 틀림없다. 이런 궁금증이 풀리길 기대하지만, 미국과 달리 너무 복잡하게 얽혀 꽤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조철환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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