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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지속가능한 사회의 인류원리

입력
2018.08.14 10:23
수정
2018.08.14 18:2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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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왜 이렇게 생겼을까? 과학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는 한 가지 방법은 우리 우주의 기본적인 물리상수들이나 자연법칙들이 하필이면 왜 그 값 또는 그런 모양을 갖고 있느냐를 따져보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모든 궁금증을 해결해 줄만한 답은 없다. 흥미롭게도 우리 우주를 설명하는 많은 숫자들이 인간 같은 고등생명체의 생존에 유리하도록 미세조정된 것처럼 보인다. 원자핵을 구성하는 양성자나 중성자 같은 핵자들 사이에 작용하는 힘의 크기가 조금 달랐다면 지금과 같은 비율로 원소들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 같은 탄소 기반의 생명체가 존재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우주의 진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우주상수도 그렇다. 우주상수는 미시세계를 지배하는 원리인 양자역학에서 예상하는 값보다 무려 10^120(10의 120승) 정도 더 작다. 만약 우주상수가 지금보다 훨씬 큰 값이었다면 우주가 팽창하는 속도가 더 커서 은하나 별이 생길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반대로 우주상수가 음수로 큰 값을 가졌다면 우주는 중력수축이 우세해 역시나 지금 우리가 관측하는 은하나 별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현존 최고의 물리학자인 미국의 스티븐 와인버그는 80년대에 인류원리(anthropic principle)라 불리는 이런 논리로 우주상수 값이 굉장히 작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리 우주의 물리상수들은 인간 같은 생명체의 출현을 허용하는 범위의 값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인류원리를 과도하게 내세우면 우리 우주가 마치 먼 미래에 인간의 출현을 미리 예견하고 거기에 맞춰 모든 것이 태초에 준비되었다고 하는 종교적인 설교로 치달을 수 있다.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1억5,000만km 떨어져 있는 것은 먼 미래에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는 우연히 태양으로부터 적당히 떨어져 있는 행성에 출현했을 뿐이다.

인류원리가 물리상수에 대한 근본적인 설명이 될 수는 없지만 전혀 쓸모가 없는 것도 아니다. 생명체가 있을 법한 외계 행성을 탐사할 때 인류원리가 하나의 좋은 길잡이가 될 수도 있다.

우주상수나 지구-태양의 거리는 우리가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그 속에 우리가 그냥 내던져진 자연환경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출현한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문명사회는 우리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여지가 많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문명사회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 즉 인류원리가 가장 적극적으로 작동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실제 현실에서는 인간들이 오히려 인류원리를 배척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최근 우리 사회의 최저임금 논란을 지켜보면서 나는 한국사회의 인류원리를 고민하게 되었다. 지난 7월 결정된 내년도 최저임금은 시간당 8,350원, 월급으로 환산하면 174만5,000원이 조금 넘는다. 경제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생활인으로서 내가 가장 궁금했던 점은 과연 월 174만원으로 2019년의 대한민국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였다.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분들에게 이 돈으로 한 달을 살라고 하면 과연 몇이나 버틸 수 있을까? 최저임금 인상에 특히 자영업자들의 반발이 컸다. 시급을 이렇게 많이 올리면 아르바이트 종업원보다 수입이 줄어 생계가 어렵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런 주장에는 분명히 귀담아 들을 현실이 담겨 있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는 그 종업원이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의 임금을 받고 있었음이 오히려 반증된 셈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정상적인 생계유지가 어려운 사람들, 이런 분들은 ‘착취’당했다고 해야 가장 적확한 표현일 것 같다. 그러니까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제가 망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영계나 일부 언론은 한국 사회가 착취(그분들은 이 단어를 좋아하진 않겠지만)를 유지하지 않고서는 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착취 없이는 유지되지 않는 사회, 참 놀랍게도 노동계와 경영계가 이렇게 의견일치를 본 적이 있었던가. 이제는 고인이 된 노회찬 의원이 생전에 ‘투명인간’이라고 말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착취의 대상이 되더라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는 경우가 없었다. 투명인간은 착취해도 괜찮은, 경제를 논할 때 논외로 치부되는 사람들이었다. 경영계의 논리는 이런 투명인간이 무한대로 많이 공급될 때에만 성립한다. 착취가 일상화된 사회는 지속가능하지 않음을 지금 우리는 낮은 출산율과 높은 자살율로 체감하고 있다. 언제까지나 ‘싸구려 투명인간’이 끝없이 착취의 자리를 메워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4차 산업혁명과 제7공화국을 논하는 지금,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원리로 한국 사회를 새로 구축할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 다른 어떤 원리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인류원리가 가장 기본이 돼야 하지 않을까? 최저임금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최소한의 인류원리이다. 우주상수는 우리가 어쩔 수 없는 문제이지만, 최저임금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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