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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의 다시 광릉 숲에서] 가로수 그늘아래서 1

입력
2018.08.1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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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덕로 가로수(산림청 제공)
대구 동덕로 가로수(산림청 제공)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매우 오래된 아파트입니다. 불편한 점도 많지만 좋은 점들도 있습니다. 문을 나서면 눈을 맞추고 인사할 수 있는 이웃이나 경비아저씨가 계셔서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점, 효율적인 면에서는 떨어져도 수납공간이 매우 깊어 야박하지 않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 그 중에서도 가장 멋진 일은 매우 큰 나무들이 줄지어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느티나무와 벚나무들이 장관입니다. 수 십 년 된 벚나무들이 단지 내 가로수로 서있습니다. 벚꽃이 피는 때가 되면 주민들은 인근에 석촌호수 꽃구경 대신 단지 내 벚나무 가로수에 반짝이는 전등을 달고 봄 밤을 즐깁니다.

제 마음이 좀 더 가는 나무들은 느티나무입니다. 시골 마을 정자나무가 되고도 남음직한 느티나무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특히 가지를 마음껏 펼쳐낼 공간이 확보되어 있는 느티나무들은 말 그대로 작은 숲이 되어 계절을 품어내지요. 연둣빛 파릇하게 새싹을 올려내는 봄, 신록이 우거진 여름, 기품있는 가을빛을 더하는 가을, 수려하게 펼쳐지는 가지의 섬세함을 만나는 겨울...

유난히도 더운 이 여름 저는 이 나무들의 또 하나의 미덕을 경험하였습니다. 큰길에서 버스를 내리면 순간 쏟아내는 도로의 열기는 숨을 막히게 합니다. 아파트입구까지에는 튜울립나무, 은행나무, 플라타너스로 이어지는 가로수가 이어지니 해의 위치에 따라 나무들이 그늘을 만드는 방형을 찾아 걸어갑니다. 도로와 나란히 이어지는 길인데도 가로수 그늘 아래는 기온이 확연히 떨어지니까요. 아파트 단지입구에서 현관까지는 앞에서 자랑한 큰 나무들이 즐비하지요. 그 큰 나무 그늘로 들어오면 순간 서늘하다 싶을 만큼 시원해집니다. 도시의 가로수 그늘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절감하는 순간이지요. 그 나무들 아랜 집안의 더위를 피해 나오신 분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이어가며 손자손녀 노는 모습을 바라보십니다. 큰 느티나무들은 삭막한 아파트 단지에서도 이웃과 소통하는 정자나무가 되고 있었어요.

제가 느꼈던 가로수 길의 효과는 이미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열화상카메라로 측정한 결과에 잘 나타나있더군요. 도로 표면 온도가 50도인데 가로수 지붕층은 30도로 나타났고요. 대전에 한밭수목원이 있는 곳과 도심은 약 10도 차이가 나며, 나무 한 그루라도 있는 곳이 더 낮은 기온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니 제가 버스에서 내려 가로수길을 걸어 큰나무길까지 이어온 동안의 온도체감효과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여기에 지난 봄 하루하루를 걱정스럽게 만들었던 도시 숲 미세먼지 농도는 도심에 비해 25.6%, 초미세먼지는 40.9%가량 낮다고 발표된 결과도 있습니다. 최고의 기록을 갱신했다는 유례없는 이 여름, 예측이 어려운 기후변화에 대한 대안의 하나에도 이산화탄소를 축적하는 나무심기가 들어가 있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 나무들이 많다면 훨씬 쾌적할 텐데 서울의 1인당 생활권 도시숲 면적은 5.32㎡로 독일 베를린(27.9㎡), 영국 런던(27.0㎡), 미국 뉴욕(23.0㎡)은 물론 세계보건기구(WHO) 권장기준인 1인당 9㎡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그러고 보면 도시에 숲으로 더하고 산촌에 숲을 곱하며 국토에 숲을 둘러 “숲 속의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한다는 산림청의 생각은 매우 적절하고 시급해 보입니다. 도시의 가능한 모든 공간에 나무를 심고 숲을 만드는 것, 열심히 조림하여 푸르게 만든 산들을 더 잘 가꾸어 몇 배 가치 있게 만드는 것, 그래서 대한민국의 국민이 행복해지면 참 좋은 일이다 싶어서입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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