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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북스토리] 개식용 합법화의 뻔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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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북스토리] 개식용 합법화의 뻔한 미래

입력
2018.07.31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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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도, 조류독감도 아닌데 닭, 돼지가 떼죽음을 당한다.

돈사 온도를 낮추기 위해 물을 뿌리는 모습. 연합뉴스
돈사 온도를 낮추기 위해 물을 뿌리는 모습. 연합뉴스

‘돈사 화재로 돼지 1,400여 마리 죽어’

며칠 전 뉴스에 돼지농장에서 화재가 나서 돈사 1개동이 전소되었는데, 죽은 돼지가 1,400마리란다. 어미돼지 490마리와 새끼돼지 1,000여 마리. 1개동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돼지가 들어갈 수 있을까. 공장식 축산, 밀집사육의 현실이 참사 속에서 드러났다. 어미돼지들은 스톨(어미돼지가 눕거나 일어나는 것 밖에 못하는 몸에 딱 맞는 철제 감금틀)에 갇혀서 오도 가도 못했을 것이고, 갓 태어난 새끼들도 우왕좌왕하다가 타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찾아보니 돼지농장의 화재가 한 달에 몇 건씩 있다. 소방 관계자는 돼지농장이 화재에 취약한 시설이라고 했다. 한 달에 몇 번씩 떼죽음이 계속되는데도 개선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는 건 이 사회에서 돼지농장의 화재는 ‘피해액 얼마’로 치환되는 과자공장의 화재와 다름없다는 이야기이다. 개식용 폐지를 논할 때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반문이 있다. “닭은? 돼지는?”, “그러니까 합법화하라고!” 맞는 말이다. 닭도, 돼지도 개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식용이 합법화된 닭과 돼지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폭염으로 가축 백만 마리 폐사’

지난 19일의 기사 제목이다. 더위를 이기지 못한 가축들이 죽어나간다. 유래 없는 폭염으로 인간이 고통 속에 있다면 공장식 축산 방식 속 가축은 지옥 속에 있다. 그렇다고 올해 유난히 많이 죽는 것도 아니다. 매년 여름이면 가축이 떼로 죽는데 2017년에 101만 마리, 2016년에 274만 마리가 죽었다. 죽은 가축 중 대부분은 닭이 차지하는데 닭은 여름에만 죽는 것도 아니다. 공장식 축산 속 닭들은 1년 365일 내내 죽어나간다.

닭농장 내부 모습.
닭농장 내부 모습.

한승태 작가가 4년간 닭농장, 돼지농장, 개농장 열 곳에서 일한 경험을 쓴 <고기로 태어나서>에 자세한 이야기가 나온다. 공장식 축산 방식으로 고기를 생산해내는 곳은 개방을 꺼려서 외국도 활동가들이 위장 취업한 후 모은 자료를 폭로하거나 책으로 낸다. 공장식 축산의 운영방식은 세계적으로 통일되어 있어서 외국 책과 영상을 보면 대략 알 수 있다. 그런데 한승태 작가 덕분에 국내 사정을 더 생생하게 알게 되었고, 탄식을 하면서 읽었다.

작가는 닭농장 중 산란계 농장, 부화장, 육계 농장 모두에서 일했는데 특히 육계 농장에서 일할 때 매일 일기에 죽은 닭의 수를 적어 놓았다. 닭농장에서 그가 맡은 임무는 죽은 닭 수거. 11만 마리를 키우는 농장에서 첫 날 그가 수거한 죽은 닭은 74마리. 매일 그만큼의 닭이 죽었고, 많은 날에는 200~300 마리가 죽었다. 죽은 닭을 제때 안 치우면 닭들이 죽은 닭을 쪼고, 그러다가 병에 걸리기 때문에 죽은 닭을 치우는 일은 중요하다. 작가는 자신이 닭농장에서 하는 일이 닭을 키우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닭을 죽이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수거하는 닭 중에는 죽은 닭도 있지만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닭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어차피 상품이 안 되니 죽여서 수거한다. 죽이는 방법은 닭의 다리를 잡고 그대로 바닥에 패대기치기이다. 돼지 농장에서 비실한 새끼들을 솎아내는 방법도 마찬가지로 바닥에 패대기치기.

<고기로 태어나서>는 한승태 작가가 4년간 닭농장, 돼지농장, 개농장 열 곳에서 일한 경험을 쓴 책이다.
<고기로 태어나서>는 한승태 작가가 4년간 닭농장, 돼지농장, 개농장 열 곳에서 일한 경험을 쓴 책이다.

닭, 돼지, 개 농장 모두 사장이 노동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같다. 동물을 생명이 아니라 물건으로 보라는 것. 2018년 한국의 개식용이 합법도 불법도 아닌 애매모호한, 사회가 용인한 폭력이라면, 공장식 축산에서 동물을 대하는 방식은 사회가 용인한 합법적인 폭력이라는 차이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식용 합법화의 미래는 폭력 지수로 봐서는 별반 다를 것 없는 공장식 축산이라는 너무 뻔한 미래 아닌가.

공장식 축산은 동물학대 문제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권, 인권문제도 심각하다. 동물을 대하는 방식은 인간을 대하는 방식과도 연관되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더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초복인 12일 오후 부산 북구 구포시장 내 식용 개 판매장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초복인 12일 오후 부산 북구 구포시장 내 식용 개 판매장의 모습. 연합뉴스

개 농장 사장은 다른 농장과 달리 작가에게 한 가지를 더 당부한다. “개를 미워하지 말고 그렇다고 정도 주지 말고.” 개라는 동물이 특별해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작가는 닭, 돼지와 환경이 비슷함에도 “개에게는 인간의 마음에 좀 더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인간과 개가 오래 함께 공진화해 왔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김보경 책공장 더불어 대표

<고기로 태어나서>, 한승태, 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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