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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환 칼럼] 페미니즘, 평등한 자유와 존엄을 꿈꾼다

입력
2018.07.19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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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커뮤니티 ‘워마드’의 노골적인 남성혐오 및 특정 종교 모독 사건으로 한국사회가 시끄럽다. 북한 문제를 둘러싼 보수〮진보의 대립과 영호남 지역갈등이 수그러들며 사회통합에 대한 희망이 조금씩 움트고 있는 상황에서 ‘워마드’는 남성을 적대와 혐오의 대상으로 특정하며 한국사회에 새로운 전선(戰線)을 조성하고 있다. ‘워마드’가 페미니즘의 한 흐름인지 아니면 맹목적인 남성혐오주의에 불과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진행 중이다. ‘워마드’ 논란이 본격화되면서 페미니즘이란 용어가 인터넷 검색어의 수위에 오른 것을 보면, 일반 대중들은 ‘워마드’를 페미니즘의 한 극단적 형태로 여기고 있는 듯 보인다. 여기에 ‘워마드’가 여성혐오를 드러냈던 ‘일베’ 사이트를 미러링(모방)한 사실을 감안해 보면 여성혐오에 대한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보복 혹은 전술적 대응으로 이해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문제는 ‘워마드’의 운동 형식이 페미니즘의 근본이념을 실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느냐의 여부이다. 일부 회원들은 남성우월주의를 무너뜨리는 데 그치지 않고 남성혐오와 여성우월주의를 표방한다. 또 그런 근거에서 여성의 사제 서임과 임신중절에 반대하는 특정 종교의 남성중심주의를 맹렬히 비난한다. 하지만 이것이 양성 평등사회를 이루기 위한 일시적인 전술 이상의 것이라면 ‘워마드’는 페미니즘 진영에 투입된 ‘트로이의 목마’가 될 개연성이 없지 않다. 차별, 혐오, 우열의 이분법 등 남성을 향한 ‘워마드’의 태도는 그 동안 페미니즘이 강력히 저항해온 남성우월주의와 매우 닮았기 때문이다.

18세기 말 영국에서 월스톤크라트(M. Wollstonecraft)가 ‘여권의 옹호’(1792)를 쓰며 자유주의 여성운동의 기치를 든 이래 지금에 이르기까지 페미니즘은 다양한 이념 및 관심사를 반영하며 독자적인 정치이념으로 발전해왔다. 전통적인 철학과 이데올로기들은 여성의 이익과 정체성 및 관심사를 진지하게 반영하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여성이 존재하고 사고하며 행위하는 방식이 남성의 그것에 비해 열등하다고 치부하며 여성들을 차별하고 억압해왔다.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남성우월주의적인 사고방식과 체제에 저항함으로써 여성의 자유와 존엄이 존중되는 민주사회 건설에 이바지해왔다.

페미니즘은 상충하기까지 하는 다양한 입장들을 포괄하는 복잡한 정치이념이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남성과 동등한 교육 및 직업선택의 기회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여성들이 대거 근로계급에 편입되고 가사노동과 자녀양육이 사회화되어야만 남성과 평등한 지위를 누릴 수 있다고 믿는다.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자녀 출산과 양육이라는 성적인 요인이 여성을 예속적 지위로 떨어트린 주범이라 간주하고 가부장주의 문화와 가정을 해체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또한 정신분석학적 페미니스트들은 자신보다 남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하게 만든 어린 시절의 경험이 여성들을 예속적인 존재로 만든다고 분석한다. 이들은 타인과 깊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여성의 장점이 오히려 여성의 최대 약점이 된다고 본다. 자신들의 필요와 욕구보다는 남성의 욕구와 필요를 먼저 챙기도록 훈육되어 ‘기꺼이’ 종속적 지위를 자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은 단일한 진리와 이론을 추구하는 전통적인 철학을 거부하고 페미니즘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들의 공존을 환영한다.

이런 내적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은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억압을 받는 다양한 방식들을 들춰내고, 여성들이 남성들과 동등한 정의, 자유, 그리고 평등을 누릴 수 있는 바람직한 질서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통일성을 갖고 있다. 페미니즘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입장들은 여성 차별의 주요 원인과 구조에 대한 상이한 인식과 평가를 반영할 뿐, 대부분의 페미니스트들은 인간 존엄의 가치를 양성 관계에 구현함으로써 남녀가 상호 존중하고 상생할 수 있는 민주사회를 세우는데 뜻을 모은다.

하지만 페미니즘이 이런 대의에 기여하는 정치이념으로 존속하기 위해서는 내부의 모순과 긴장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강자들의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면서도 정작 태아와 같이 더 나약한 존재를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권력을 요구하는 모순적인 태도는 페미니즘의 보편적 호소력을 떨어트릴 수 있다. 또한 여성들 내부에 존재하는 계층적‧인종적‧종교적 긴장을 해소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근거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내부 분열로 실천적 동력이 크게 약화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페미니즘의 언저리에 존재하는 극단주의나 사이비 페미니즘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그런 왜곡된 형태들이 페미니즘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좌우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워마드’ 사태는 한국 페미니즘의 위기해결 능력을 검증하는 중대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 할 것이다.

김비환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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