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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근 칼럼] 결혼 세태 속 신세습사회 그림자

입력
2018.07.1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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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우선이었던 배우자 선택 기준

소득양극화 등에 부모 재력이 대체

결혼마저 가진 자들의 축복이어서야

어떤 사회에서든 결혼은 무작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과 사회적 지위, 학력, 종교 등이 비슷한 배우자를 만나게 된다. 배경 특성이 동질적일 때 서로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가 많고 갈등을 겪을 일도 적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선 배우자를 고를 때 학력을 많이 따지는 편이다. 이 때문에 배우자 간 학력 상관도가 매우 높다. 이런 현상을 교육적 동질혼이라 일컫는다. 국제비교 연구에 따르면 교육적 동질혼 경향은 유교문화의 지배를 받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두드러진다.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한국은 교육적 동질혼이 가장 보편화한 나라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배우자를 선택할 때 학력을 중시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서 학력은 개인의 면면을 평가하는 핵심 척도로 작용해 왔다. 이 때문에 ‘가방끈’ 길이가 짧으면 인정 욕구의 충족이 쉽지 않다. 맨손으로 큰 부(富)를 일군 사람들 중에 미진했던 학업을 두고 아쉬움과 회한을 토로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된다. 우리 사회의 치열한 교육 경쟁도 배우자의 ‘가방끈’ 길이에 대한 집착을 강화한 측면이 있다. 가급적이면 높은 학력의 배우자를 만나는 게 치열한 교육 경쟁에서 자녀가 우위를 점하도록 하는 데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광범하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개 산업화와 도시화는 낭만적 사랑에서 비롯한 결혼이 발생할 가능성을 높인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 상이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 간의 접촉이 늘고 결혼이 성사되는 과정에서 부모의 통제력도 약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선 조금 다른 그림이 나타났다.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 자료를 분석해 보면 적어도 1990년대 중반까지는 학력 중시 결혼이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경제성장의 과실을 본격적으로 향유하던 시기에 좀 더 나은 삶을 향한 뜨거운 열망이 낭만적 결혼의 유혹을 압도했던 것으로 읽힌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에 우리 사회를 덮친 외환위기는 강고한 교육적 동질혼 경향에 극적인 변곡점을 가져온다. 전례 없는 구조조정과 대량 실업은 학력의 가치에 대한 환상을 산산이 깨뜨렸다. 나아가 하루가 다르게 심화된 고용절벽 및 소득양극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개인의 노력을 통한 신분상승 가능성에 깊은 회의를 갖게 했다.

이에 따라 젊은 남녀가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도 눈에 띄게 변했다. 학력이 핵심 고려 대상에서 밀려나고 부모의 재력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경향이 갈수록 뚜렷해졌다. 이 때문에 한때 괜찮은 신랑감으로 여겨졌던 ‘개천에서 난 용’은 부유층 사이에서 대표적인 기피 대상이 됐다. 대신 강남 같은 곳에선 자녀 혼처를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 주변에서 구하기 위해 이런저런 모임이나 행사를 갖는 분위기가 포착되고 있다. 아무리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고 임대업자가 초등학생의 장래 희망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세상이 됐지만 사람 됨됨이보다 부모의 배경이나 재력을 더 중시하는 결혼 세태는 씁쓸하기 짝이 없다.

어떤 사회에서든 사회적 특성이 비슷한 사람들끼리의 결혼은 자원 배분의 편중과 집단 간 분리를 심화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도 교육적 동질혼은 계층 간 교육격차나 소득격차의 확대에 적잖이 영향을 끼쳤을 공산이 크다. 따라서 원론적으로 교육적 동질혼의 약화는 좀 더 개방적인 사회로 나아가는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선 그걸 기대하기 어렵다.

요즘 교육적 동질혼 경향이 약화된 건 애정 중시 결혼이 늘어나서가 아니고 부모의 재력을 고려한 배우자 선택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전보다 외려 훨씬 더 폐쇄적인 신세습사회의 도래를 예견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인 것이다. 이런 와중에 경제적 여건 때문에 결혼을 지레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기도 하다. 결혼마저 가진 자만이 누리는 축복으로 남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청년들이 살 만한 세상에서 더욱 멀어지는 것 아닐까.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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