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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영의 식물과 인간] 이팝나무

입력
2018.05.22 19:42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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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일년 내내 철따라 아름다운 꽃과 더불어 살아 왔다. 오늘날 우리 조상들이 꽃에 부여했던 의미나 감정이 변화하긴 했지만 꽃은 여전히 풍요로운 마음과 아름다운 정신을 지켜주는 상징이자 소중한 자산이다.

5월 중순, 못자리(논농사)가 한창일 때 아름드리 이팝나무 가지에는 꽃송이가 함박눈이 내린 듯 뒤덮는다. 멀리서 보면 때아닌 흰 눈이 온 듯하고, 소복한 꽃송이가 사발에 얹힌 흰 쌀밥 같기도 해서 이밥(쌀밥)이라 불렀다. 이런 이팝나무는 천연기념물로 8그루나 되고, 20여 그루는 신목(당산목, 정자목)으로 남아 있다.

이팝나무와 쌀밥에 얽힌 애달픈 이야기가 있다. 며느리가 5월 어느날 제사를 모시려고 귀한 쌀밥을 하다 뜸이 들었나 보려고 밥알 몇 개를 떠먹는 것을 시어머니가 보곤 제사에 올리기 전에 며느리가 먼저 퍼먹었다고 심하게 구박했다. 며느리는 너무 억울한 나머지 뒷산에 올라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며느리 무덤가에 흰꽃이 수북한 나무가 생겼다. 사람들은 쌀밥에 한이 맺힌 며느리의 환생이라며 이 나무를 이팝나무라 부르게 되었다.

이팝나무 꽃이 만발할 때 사발에 담긴 쌀밥(이밥)처럼 보여 ‘이팝나무’, 전라북도 일부 지방에서는 24절기 중 입하 때 꽃이 핀다 하여 ‘입하목(入夏木)’, 어청도 사람들은 ‘뻿나무’라 부른다. 한자로는 육도목(六道木), 유소수(流蘇樹)라 하고,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잎을 차(茶) 대용으로 쓰기 때문에 ‘다엽수(茶葉樹)’라고도 부른다.

한번 핀 꽃은 20일이 넘도록 은은한 향기를 사방에 내뿜는다. 가을에는 낙화가 장관이고,타원형 열매가 겨울까지 달려 있어 정원수, 가로수로 가치가 높다. 이팝나무는 한 해의 풍년을 점치는 나무였다. 흰 꽃이 많이 피면 풍년이 들고 그렇지 못하면 흉년이 든다고 조상들은 믿어 왔다. 최초로 천연기념물 제36호로 지정된 전남 승주군 쌍암면의 이팝나무는 수령이 500살쯤 된다. 진안 마령초등학교에는 천연기념물 214호(사진)가 있는데, 아름다운 꽃으로 풍흉(豊凶)을 예견하고 있다.

이팝나무는 식용으로 이용된다. 꽃에서 구수한 향기가 나서 차(茶)로 먹을 수 있다. 어린 잎을 따서 비비고 말리기를 몇 차례 하면 좋은 차(茶)가 되고, 잎을 따서 끓은 물에 살짝 데쳐서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하고, 열매를 가을에 따서 술을 담가 먹는다. 한방에서는 열매를 ‘탄율수(炭栗樹)’라 하여 기력이 감퇴되어 일어나는 수족마비와 이뇨제로 쓴다.

우리 특산종으로는 제주도에서 자라는 긴잎이팝나무가 있고, 어청도와 포항에 군락지가 있다. 이팝나무 꽃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황홀경에 빠지게 하는데, 계룡시는 이팝나무 축제를 열기도 하고, 가로수로 이팝나무를 많이 심어 국도변 곳곳에서 쉽게 구경할 수 있다.

이처럼 화려한 꽃을 피우는 이팝나무는 키가 30m가 넘게 크지만 다른 나무에 비하여 번식이 까다로워 삽목이 잘 안되고, 어릴 때는 왕성하게 빨리 크게 자라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식물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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