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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정적(靜寂)] 명심(銘心)

입력
2018.05.21 13:55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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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배움을 통해 과거라는 현상유지의 단계에서 미래라는 자신이 열망하는 단계로 진입한다. 배움은 과거의 자신에 안주하려는 이기심에 대한 체계적인 공격이며, 더 나은 자신을 만들기 위해 진행 중인 수련이다. 내가 공부해야 할 대상은 ‘지금’이다. 나의 미래는 ‘지금’을 어떻게 조각하느냐에 달려있다. 나는 스스로 감동하는 미래를 구축하기 위해 현재에 몰입한다. 그런 미래의 자신을 상상하고 구축하려는 수련이 ‘학습(學習)’이다. ‘학습’이란 단어는 배움의 핵심을 담고 있다. 배움(學)이란 습관(習)이다. 정신적인 깨달음은 육체적인 노동을 반복함으로 완성된다. 어미새의 비행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목격한 어린 새는 스스로 날개를 퍼덕이며 비행을 스스로 연습해야 비로소 새도 태어난다. 배움이 실질적인 행위로 보강되지 않는다면, 그런 배움은 거짓이다.

사람들은 흔히 남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고 이기기 위해 배운다. 우리는 사회가 요구하는 것들을 학습하느라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미리, 많이, 그리고 빨리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생존과 성공의 열쇠로 판단한다. 이런 생각은 영국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설파한 20세기 복음에서 강화되었다. 다윈은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이 호모 사피엔스가 만물의 영장이 된 원칙이라고 주장하였다. 다윈의 진화론적 복음은 사회과학과 인문학에 전도되어 현대사상을 낳았다. 현대인들은 배움을 타인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생존 장비로 수용하였다.

배움은 남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도구인가? 배움은 더 나은 자신을 만들기 위한 고독한 수련이다. 나는 요즘 새로운 방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나는 이번 학기 몸과 마음을 모두 훈련하는 수업을 진행한다. 매주 월요일 오전, 두 시간 반 동안 진행되는 ‘요가수련과 요가수트라’ 수업이다. 나와 학생들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월요일 오전 9시30분이면, 학교 스포츠센터 수련실에 앉아있다. 모두 눈을 감고 침묵한다. 배움은 자신에게 고유한 한 가지 임무를 듣기 위해 오히려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안하고 고요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 후 1시간 동안 요가강사의 시범에 따라 평상시에 사용해 본적이 없는 근육들을 움직인다. 배움이란 자신이 소홀하게 여긴 정신적이며 육체적인 근육을 일깨우고 단련하는 훈련이다. 한마디로 익숙한 몸가짐에서 탈출하는 ‘엑스터시’다. 나머지 1시간 동안 파탄잘리의 ‘요가수트라’에 등장하는 한 구절을 묵상한다. 요가는 마음속에 알게 모르게 쌓인 잡념을 소멸하려는 연습이다.

나는 유사한 수업을 미래혁신교육기관인 ‘건명원’에서도 진행한다. 이곳에서 나는 원생들에게 골방으로 들어가 스스로에게 몰입하는 ‘필사(筆寫)’ 숙제를 낸다. 교재는 로마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의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와 ‘행복한 삶에 관하여’다. 원생들은 매일 1장씩 연필로 종이에 필사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한 장소와 시간에 가장 아름다운 글씨로, 에세이에 담긴 글들을 또박또박 써온다. 필사는 행간 사이에 숨겨져 있는 비밀을 발굴하는 과정이다. 원생들의 눈빛, 표정, 그리고 몸가짐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필사와 유사한 내용이 성서에도 등장한다. 히브리 성서 ‘잠언’ 7.3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한다. “배운 것을 손가락 위에 매달고, 너의 심장이라는 서판(書板)에 새겨라” 배움은 머리에서 멈추지 않고 손가락이 상징하는 육체의 움직임으로 이어진다. 심신의 배움은 ‘심장 이라는 서판’에 새겨진다. ‘심장서판’이란 히브리어 표현은 ‘루아흐 레브(luah leb)’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심장’이 지적이며 영적인 활동을 위한 중앙제어장치라고 여겼다. 심장은 마치 조각가가 문자를 새겨야 할 석판과 같다. 내 마음의 석판에 새겨야만 배움이 행동으로 이어진다. 한자 ‘명심(銘心)’은 배움의 핵심내용을 담고 있다. 배움은 자신의 머리가 아니라 심장에 그 내용을 새기는 작업이다. 건명원 원생들은 자신들의 심장에 성현들의 가르침을 새긴다.

배움은 나의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최선의 가치다. 남들이 보기에 좋은 대학을 나와 존경을 받을 것 같지만, 말과 행동이 정연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을 하대(下待)하는 사람은, 실제로는 배우지 못한 사람이다. 배움은 자신이 배운 것을 실제 행위로 반복한 자신의 습관이기 때문이다. 그는 배움을 통해 자신의 삶을 조금씩 개선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정돈되어있고 스스로에게 친절하다. 그런 사람이 남에게도 친절하다. 기원후 2세기 랍비 벤 쪼마는 탈무드 ‘선조들의 어록’ 4.1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가 지혜로운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이다. 누가 강한가?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는 사람이다. 누가 부자인가? 자신의 몫에 만족하는 사람이다. 누가 존경을 받을 만한가? 자신의 동료들을 존경하는 사람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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