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이충재 칼럼] ‘숨은 보수’는 있을까

입력
2018.05.14 18:25
30면
0 0

‘여론조작’ 주장하며 보수결집 목매는 홍준표

‘문재인 반감’보다 낡은보수 환멸에 기권 가능성

사죄와 환골탈태 없으면 ‘역사적 참패’할 수도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왼쪽)가 13일 울산에서 열린 6ㆍ13 지방선거 필승결의대회에 참석해 김기현 울산시장 예비후보와 함께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왼쪽)가 13일 울산에서 열린 6ㆍ13 지방선거 필승결의대회에 참석해 김기현 울산시장 예비후보와 함께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여론의 집중포화에도 막말을 멈추지 않는 것은 그 나름의 선거전략이다. 어차피 중도로의 외연 확장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집토끼라도 확실히 지키자는 심산이다. 그가 각 지역 지원유세 때마다 “선거의 본질은 상대편 지지자 빼오기가 아니라 자기편 지지자 결집”이라고 주장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홍 대표는 여론조사에서 드러나지 않은 ‘숨은 보수표’가 적지 않다고 확신하고 있다. 정부의 방송 장악과 언론 핍박, 포털 조작, 여론조사 조작으로 민심이 왜곡돼 있다고 믿는다. 보수가 위축된 분위기에서 당당하게 자유한국당 지지 의사를 밝히지 못하는 유권자들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전화 여론조사 방식이 ‘침묵의 나선이론(특정한 견해가 퍼져 있을 때 반대 견해를 공개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는 이론)’을 증폭시킨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숫자가 현 판세를 뒤흔들 정도는 아니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 분석이다.

촛불시위와 대통령 탄핵 사태를 거치며 우리 사회의 이념지형은 크게 바뀌었다. 보수성향 유권자 상당수가 중도나 진보로 옮겨갔다. 최근 갤럽의 ‘한국사회 통합실태 조사’를 보면 2016년 보수와 진보의 비율이 26%로 대등했으나 1년 만에 21%대 31%로 진보가 10%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애초 홍 대표가 기대하는 이른바 ‘샤이(부끄러운) 보수’가 많다고 보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홍 대표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숨어 있는 보수 유권자들을 투표장에 불러내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들을 불러내려면 그만한 유인이 있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샤이 보수’들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만은 있지만 ‘낡은 보수’에 대한 환멸도 많다. 그들이 가장 분노하는 것은 한국당이 모신 이명박ㆍ박근혜 두 대통령이 감옥에 있는데 책임지는 국회의원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일련의 상황은 두 대통령의 통치 실패가 근본 원인이지만 여당으로서 국정운영의 한 축을 맡았던 한국당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실제 그들은 손해 볼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 “탄핵 직후에는 당 간판을 내릴 줄 알았는데 이 정도 회복한 게 어디냐. 이만하면 됐다”며 만족해 하는 게 지금 한국당 모습이다. 내후년까지 국회의원은 보장됐고 그때 가면 문재인 정부가 내리막길로 접어들 테니 이대로 가면 된다는 속셈이다. ‘홍준표 리스크’도 당 대표 개인의 위기로 여길 뿐 ‘보수의 위기’로 치환하려 하지 않는다.

반성도, 변화할 의지도 없으면 보수의 얼굴이라도 새 피로 수혈해야 하는데 그 나물에 그 밥이다. 6ㆍ13 지방선거에서 무경선 공천 후보들을 보면 거의가 ‘친박’에 ‘올드보이’들이다. 그들의 연령을 문제삼는 게 아니라 긴 정치경력에 합당한 뚜렷한 정치적 성과를 보였느냐를 따져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샤이 보수’들은 문재인 정부가 싫다고 한국당을 찍기보다는 차라리 투표장에 안 가는 게 낫다고 마음먹지 않을까 싶다.

보수불패의 두 축이었던 ‘반공주의’와 ‘성장주의’로 우리 사회의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풀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위장평화 쇼”라는 억지가 아직도 통할 거라고 믿는다면 오산이다. 장기적 안목으로 국가와 시민사회를 이끌 보수의 새로운 가치를 제시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보수의 가치와 철학, 인물, 당 구조와 시스템의 전면적 재구성이 필요하다.

홍 대표부터 달라져야 한다. 뉴시스가 19대 대선을 다시 치를 경우의 지지율을 조사했더니 문 대통령이 69%로 대선 득표율(41%)보다 28%포인트 높아진 반면 홍 대표는 16%로 대선 때보다 7%포인트 떨어졌다. 홍 대표의 이념적 자폐성이 보수진영은 물론 자신의 지지기반을 극도로 좁히고 있는 것이다. 홍 대표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심이 과연 어떤지 확인해 보자”고 자신감과 배짱을 과시했다. 그가 지금과 같은 인식을 갖고 있다면 단언컨대 역사적 참패를 당할 수 있다. 보수는 아직 바닥을 치지 않았다. cj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