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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 칼럼] 힘 있는 사람과 가진 사람의 도리

입력
2018.05.10 11:21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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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시절만 해도 사람들은 예의도 차렸고, 염치도 어느 정도는 있었건만 세상이 변하면서 사람다운 품행이나 마음씨는 갈수록 사라져가니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기만 한다. 권력자들이 독재 권력의 유지를 위해 인간의 자유와 인권을 짓밟고 온갖 포악한 행위를 그치지 않았던 권위주의 시대를 생각해보고, 재벌공화국의 오너나 그 가족들이 저지른 패악한 인격 말살행위들을 생각하면, 순자의 ‘성악설’을 무시할 수 없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유신시대의 포악한 정치나 신군부의 5공 독재는 인간이기를 거부한 야만과 오욕의 시대였다.

이명박ㆍ박근혜 정권 또한 덜 심하긴 했지만 언론을 탄압하고, 민간인들을 사찰하고, 댓글로 여론을 조작하고,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특정인들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했던 사실은 또 우리들을 얼마나 분노하게 했던 사실들이었던가. 지나고 보니 그래도 다행한 일이지만, 그런 세월을 보냈던 우리 국민들의 인내심도 대단한 정도였음을 알게 된다. 최근에 우리나라의 언론자유 지표가 껑충 뛰었다는 보도를 보면서 촛불의 힘이 역시 크구나라는 생각도 들게 해준다.

‘목민심서’라는 다산의 책에는 권력자들이나 부자들이 아랫사람을 어떻게 대해주어야만 나라다운 나라가 되고 기업다운 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많은 담론이 열거되어 있다.

“윗사람들은 흔히 형벌과 무서운 매질로써 아랫사람을 단속하는 근본으로 삼는다. 그러나 청렴하지도 못하고 지혜롭지도 못하면서 사나움을 위주로 한다면 그 폐단은 난(亂)에 이를 것이다”(‘束吏’)라고 말해 혹독한 처벌만을 단속의 방편으로 삼는다면 끝내는 난리가 나고 말 것이라는 경고를 하였다. 공자는 아랫사람들을 거느리면서 “관대해야만 아랫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寬則得衆)”라고 말했다면서, 다산은 “윗자리에 있으면서 너그럽지 못한 것은 성인(聖人)들이 경계한 바이니, 너그러우면서도 해이하지 않으며 어질면서도 나약하지 않으면 또한 그르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居上不寬 聖人攸誡 寬而不弛 仁而不懦 亦無所廢事矣: ‘束吏’)”라고 말하여 관대한 마음으로 하급자들을 대해야만 낭패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얼마나 옳은 주장인가.

권력만이 최고이고, 재산만이 가장 값이 좋은 것이라고 여겨, 권력에 도취되어 아랫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려먹는 독재자들, 재산의 위력에 정신을 잃고 아랫사람들을 하인이나 종들처럼 부려먹고, 그의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짐승처럼 대하는 예의나 염치를 상실해버린 사람들 때문에 우리 백성들은 고달프게만 살아왔다. 권력자들의 갑질도 속상한데, 재벌들의 갑질까지 극성을 부리면서 권력과 재벌의 횡포가 이렇게 무서운 것인가를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권력은 횡포를 줄이고 있는데, 부자들의 횡포가 그치지 않아 우리를 슬프게 해준다.

권력자이면서 관대하고, 부자이면서 예의와 염치를 지켜준다면 세상이 얼마나 밝아질까. 예(禮)도 없고 은혜도 없는 세상에 분개하던 정약용의 마음이 더욱 새롭게 여겨질 뿐이다. 권력자나 부자들이 취해야 할 가장 바른길에 대하여 애초에 공자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자공(子貢)이라는 공자의 제자가 공자에게 물었다.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고 부자이지만 교만하지 않다면 어떻습니까?(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라고 말하자 공자는 “훌륭하다.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즐겁게 살고 부자이면서도 예의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學而편)”라고 답하여 권력자나 부자들이 취해야 할 최상의 경지가 어디인가를 설명해주었다.

‘가야(可也)’라는 두 글자는 일반적으로 ‘괜찮다’라고 해석하는데, 만족할만한 해석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이 아첨하지 않고, 부자이면서 교만하지 않기가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인가. 실제로 그렇게만 해도 참으로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공자 같은 성인은 거기에 만족하지 못해 ‘훌륭한 일이기는 하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면 가난한 삶에도 도(道)를 즐기고, 부자이면서도 예의 바르게 살아간다면 더욱 훌륭한 일이라는 최고 경지까지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논어’의 이야기만 거론해보아도 부자들이 거만하고 교만하지 않기가 얼마나 어려우며, 권력자들이 권력의 횡포를 부리지 않고 관용과 너그러움으로 아랫사람을 대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바로 알아볼 수 있다.

본질적인 문제로 돌아가 보자. 다산 정약용은 인간이 해야 할 본질적인 일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고 말하여, 자기 자신의 인격을 제대로 닦은 뒤에야 남에게 봉사하는 ‘치인(治人)’의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부자가 되기 전에, 권력자가 되기 전에 자신의 인격을 제대로 갖추어 사람답고 인간다운 격(格)을 갖춘 뒤에 부자도 권력자도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부자가 되면 천민자본주의가 되고, 그러지 못한 사람이 권력자가 되면 독재자나 흉포한 권력자가 되어버린다.

부자들의 갑질이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모든 국민의 마음을 불편하고 고통스럽게 해주는 오늘, 아첨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의 신세가 너무 애처로워, 가난해도 아첨 말라는 공자 말씀이 서운하게만 생각되니 어쩌란 말인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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