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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4월에는 동백꽃을 달아주세요

입력
2018.04.03 14:51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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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젖만 먹고 자라지 않는다. 바람도 맞고 이야기도 들어야 자란다. 어느 때부터인가 바닷가 절벽 위에 서서 온몸으로 바람을 맞던 소년이 집에서 60리 떨어진 책방에서 150원짜리 삼중당 문고를 발견했다. 이야기는 새로운 양식이 되었다. 삼중당 문고는 1970ㆍ80년대 청소년에게 엄마의 젖, 바닷바람 같은 존재였다.

김유정의 ‘동백꽃’도 그 가운데 하나다. 내가 살던 바닷가 마을에는 동백꽃이 지천이었다. 맨날 보던 꽃나무가 책 제목이라니 반가울 수밖에. 이야기는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주인공 소녀 점순이는 화자인 나를 괴롭힌다. 점순이는 나를 좋아하는데 아직 어린 나는 그 마음을 받아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때 등장하는 충격적인 대사가 나온다. “얘! 너 배냇병신이지?” “얘! 너 느 아부지가 고자라지?”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 없는 대화를 풀어서 설명해 주는 어른은 없었다. 그 뜻을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이야기는 재미있었지만 의문이 남았다. 내가 보던 동백꽃은 겨울이면 여수 오동도를 붉게 물들이는 꽃이다. 따뜻한 바닷가에 피는 꽃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소설 ‘동백꽃’의 배경은 작가의 고향인 강원도다. 게다가 작가는 소설에서 동백꽃이 샛노랗게 보인다고 묘사했으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소년에게 책이 갖는 권위는 엄청났다. 엄마와 선생님의 말은 무시하기로 했다. 동백꽃은 따뜻한 바닷가에만 피는 게 아니라 추운 강원도 산골에서도 필 수 있고 빨간 동백꽃뿐 아니라 노란 동백꽃도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땅에 뿌리내리고 사는 어른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동백꽃은 붉은색이고 따뜻한 바닷가에 핀다.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 꽃을 동백꽃이라고 한다. 김유정의 동백꽃은 생강나무 꽃일 확률이 높다. 적어도 내가 보던 그 동백꽃은 아니다.

김유정의 동백꽃이 내 마음속에서 시들해질 무렵 송창식이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라고 노래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본 게 전체 세상인 줄 안다. ‘후두둑’을 읊을 무렵 나는 ‘아, 송창식은 오동도를 노래하는구나’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선운사란다. 도대체 선운사가 어디인가! 선운사가 어디인지 알아볼 틈도 없이 시인 최영미는 ‘선운사’라는 시에서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이라고 읊었고, 시인 김용택도 여자에게 버림받고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고 고백했다. 여수 오동도가 아니라도 괜찮았다. 선운사가 있는 전북 고창은 바닷가라고 할 만한 곳이니까 말이다.

내가 여수에 살던 시절 가장 가보고 싶은 유럽 도시는 독일에 있었다. 남해안 작은 도시에 사는 아이에게도 알려질 정도로 유명한 도시였다. 덕분에 이응로, 윤이상, 천상병이라는 불순한 이름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TV 뉴스에 나오는 도시는 왠지 불운하고 절대 가서는 안 되는 곳처럼 들렸지만 이름이 너무 아름다웠다. 맙소사. 도시 이름이 동백림이라니! 공산국가 동독의 수도 동베를린을 일컫는 말이지만, 붉은 동백나무가 숲을 이룬 도시라니 어찌 가보고 싶지 않았겠는가.

윤이상은 내가 독일에서 공부하던 1995년 폐렴으로 숨을 거두었다. 내게 (성을 이름 뒤에 부르는 독일식으로) 이상윤의 부고를 전하는 지도교수님에게 뜨악한 표정을 지어서 교수님을 한숨 짓게 만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윤이상의 고향은 통영. 따뜻한 바닷가다. 2017년 7월 5일 통영의 동백나무 한 그루가 베를린의 윤이상 묘소 옆에 심어졌다. 고향 땅을 밟지 못한 윤이상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었다. 그리고 지난 3월 20일 윤이상의 유해가 통영국제음악당 묘역에 이장됐다. 통영의 바닷바람 속에서 윤이상은 이제 원 없이 동백나무 향기를 맡을 것이다.

지난 3월 초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사인 김완병 박사는 내게 아무 말 없이 동백꽃 배지를 한 움큼 쥐어주었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올해는 제주 4ㆍ3 70주년이라는 것은 다 아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하필 동백일까? 제주라고 하면 유채꽃이 먼저 떠오르는데 말이다.

추운 겨울 홀로 강렬하고 화려한 꽃망울을 터뜨리는 동백은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이다. 하지만 하얀 눈밭에 만개하던 동백은 어느 날 툭하고 통꽃으로 지고 만다. 강요배 화백은 통꽃으로 지는 붉은 동백을 70년 전 희생당한 제주도민으로 보았고, 그게 이어져서 동백꽃이 4ㆍ3 70주년의 상징이 되었다.

어린 시절에는 김유정의 소설 제목 동백꽃이 불편했다. 하지만 동백이 꼭 따뜻한 바닷가에서만 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제주도 사람들은 4ㆍ3 이야기만 나오면 “속솜헙서”라고 말했다. “말하지 맙시다”라는 뜻이다. 그렇다. 제주 4ㆍ3은 70년 동안이나 침묵을 강요당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는 특별전 ‘제주 4ㆍ3 이젠 우리의 역사’가 열리고 있다. 4ㆍ3은 이제 제주의 역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다. 동백꽃은 따뜻한 바닷가뿐만 아니라 내 가슴에도 피어 있다. 4월에는 동백꽃을 달자.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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