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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 칼럼] 왜 오늘도 목민심서인가

입력
2018.03.29 15:05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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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년, 다산 정약용은 18년째 귀양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때 나이는 57세, 봄에 48권에 이르는 대저 ‘목민심서’를 탈고하고, 가을 마침내 귀양이 풀려 고향으로 돌아왔으니, 금년으로 200주년을 맞았다. ‘성서’나 ‘논어’는 2,000년, 2,500년이 지났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인류 모두가 가장 즐겨 읽는 책이다. 예수나 공자 같은 성인의 말씀이 담긴 책이어서, 시대와 지역을 떠나 만인에게 도움을 주는 책이어서 왜 오늘도 성서이고 논어인가라는 질문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목민심서에 대해서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다. 한문으로 되어 있는 책이 하나 둘이 아닌데, 세월이 그만큼 흘렀는데 하필이면 목민심서인가라는 물음이 있을 수 있다. 19세기 초엽이라는 시대적 제약이 있고, 전제군주국가의 관료를 지냈던 정약용이라는 인간적 한계를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러한 시대에, 그러한 처지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나라는 어떻게 다스려야 하고, 백성들은 어떻게 보살펴 주어야 하며,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하는 공직자들은 어떻게 국민을 섬겨야 하는가를 올바르게 제시해준 책이기 때문이다.

“뒷날 참판을 지낸 유의(柳誼, 1734∼?)가 홍주목사로 있을 때, 찢어진 갓과 성근 도포에 찌든 색깔의 띠를 두르고 조랑말을 탔으며 이부자리는 남루하고 요도 베개도 없었다. 이리하여 위엄을 세우게 되니 가벼운 형벌조차 쓰지 않았으나, 간사하고 교활한 아전들이 모두 숨을 죽였다. 그때 나는 홍주목의 예하 벼슬인 금정도찰방으로 있을 때여서 직접 목격한 일이다(치장ㆍ治裝)”

인용한 글에서 보듯, 목민심서는 관념적이고 이론 위주의 탁상공론이 아니라 정약용 자신이 벼슬하면서 행했던 일이나 자신이 직접 목격한 공직자들의 삶과 행위를 나열하여 그런 올바른 일을 본받을 수 있게 해준 책이다. ‘치장’ 조에서 인용한 유의라는 청백한 관료의 행위를 ‘속리(束吏)’ 조에서 다시 인용, “홍주 아전들의 간사하고 교활함이 충청도에서도 가장 심했는데. 유의가 청렴과 검소함으로 스스로를 지키면서 백성들을 사랑하니, 아전들이 모두 열복(悅服)하여 회초리 하나 쓰지 않았는데도 털끝만큼도 잘못하는 일이 없었다. 나는 이것을 보고 스스로를 규율하는 행동(율기ㆍ律己)이 하급관리들을 단속하는 근본임을 알게 되었다”라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48권의 목민심서는 ‘부임(赴任)’에서 ‘해관(解官)’에 이르는 12편마다 6개 조, 모두 72조로 구성됐다. 당시로 보면 목민관이지만, 요즘으로 치면 통치자들, 곧 백성들을 보살펴주고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줄 막중한 책임이 있는 공직자들이 지켜야 할 준칙을 제시한 책이다.

상부에서 임명해 주어 현지에 ‘부임’해야 할 목민관으로 부임해서 거창한 취임식 같은 것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일부터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해관’에서 현지에 갈 때 가지고 갔던 소지품 이외에 아무것도 더 가지고 오지 말라는 당부에 이르기까지, 그렇게만 실제로 실행한다면 반드시 나라는 나라다운 나라가 된다고 확신하며 지은 책이다. 정약용 자신이 목민심서의 서문에서 밝힌 대로, 율기(律己)ㆍ봉공(奉公)ㆍ애민(愛民)이라는 3대 강령을 원칙으로 제시해서 현실 정치이자 행정의 실제인, 이(吏)ㆍ호(戶)ㆍ예(禮)ㆍ병(兵)ㆍ형(刑)ㆍ공(工)의 여섯 행정을 통해 3대 강령의 실천 목표인 ‘공렴(公廉)’을 구현해내야만 모든 국민이 염원하는 ‘선치(善治)’의 나라가 된다고 확신했던 내용이다.

공직자나 공무원(公務員)은 공(公)을 위하고 공하게 일하는 사람을 말한다. 공무원이 공에 힘쓰지 않아, 행여라도 사(私)에 힘쓰고 사심을 지니고 일하면 나라는 망하게 된다. 그래서 봉공(奉公)은 바로 공에 봉사하는 일만이 공무원이 해야 할 일임을 강조한다. 율기의 핵심은 청렴인 염(廉)이다. 청렴을 떠난 공직자가 공직자일 수 있는가. 그래서 다산은 28세에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을 시작하면서 필생의 목표로 ‘공렴’한 공직생활을 하겠노라고 자신의 각오를 밝히고, 그가 지은 모든 경세학(經世學)의 저술에는 공렴을 실현할 원칙과 방법을 제시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게 된다.

“상관의 명령이 공법(公法)에 어긋나고 민생에 해가 된다면, 마땅히 의연하게 굽히지 말고 확연하게 자신을 지켜야 한다(예제ㆍ禮際).” 무서운 이야기이다. 대통령이 지시해도 그 내용이 공법에 위반되고 민생에 해가 된다면 따르지 말라는 뜻이다. 공법에 위배되고 민생에 해가 되는 일은 대통령의 사욕에서 나온 일이다. 이런 것을 따라야 하는가. 공을 위해서는 절대로 따르지 않아야 한다. 전직 두 대통령이 법망에 걸려 있음은 공법에 어긋나는 명령을 내리고 민생에 해가 되는 일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따른 모든 부하들은 공을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 모두가 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한 대목만 보아도 목민심서는 200년 전의 책이 아니다. 이제라도 목민심사를 읽고 그대로 실천하자. 그래야 공렴의 세상이 온다. 그렇다면 오늘이라고 목민심서가 아니고 다른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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