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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서구 문학의 홀로코스트 집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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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서구 문학의 홀로코스트 집착

입력
2018.03.21 13:05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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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헨나(Gehenna)는 예루살렘 남서쪽 계곡에 있었던 쓰레기장에서 파생된 단어로, 저주받은 혼들이 가는 곳이다. 내 집에도 게헨나가 있다. 다 읽고 버리거나, 버려야 할 책들이 잠시 머무는 신발장 곁의 작은 공간이 거기다. 출판사에서 증정한 책 가운데 곧바로 게헨나로 직행하는 책들이 있다. 예컨대 최근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어느 캐나다 작가의 소설이 그랬다. 올해 개정판이 나온 그의 책 뒷표지에는 이런 광고문이 적혀 있었다. “홀로코스트는 당신의 박동하는 심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포스트 홀로코스트 문학의 기념비적 작품” 살짝 구역질이 솟았다.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서구 작가들의 작품을 늘 의심해 온 편이었지만, 구역질까지 느끼기 시작한 것은 고작 1년 밖에 안 된다. 그 계기가 된 것이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의『살해당한 베토벤을 위하여』(도서출판 열림원,2017)다. 바흐의 음악은 인간에게 신을 향해 “무릎 꿇어”라고 말하고, 모차르트의 음악은 “받아들여”라고 속삭인다. 반면 베토벤의 음악은 신에게 “우리 그만 헤어지자”라고 설득한다.” 베토벤의 저 유명한 교향곡 9번 <합창>의 피날레는 신이 아닌 인류애에 바쳐졌는데, 이 대목은 음악의 중심에 미사(missa)가 자리했던 서양 음악사에서 굉장히 큰 의미를 갖는다. 이처럼 인류의 우애와 진보를 확신했던 베토벤의 이상은 아우슈비츠에서 상징적인 살해를 당했다.

“아우슈비츠가 증명하는 것은, 과학과 기술에는 혹 진보가 있을지 몰라도, 인류 안에는 결코 진보가 없다는 사실이다. 철저한 실패.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은 더 선해지지 않았고, 더 똑똑해지지도 않았으며, 더 도덕적인 존재가 되지도 않았다. 아우슈비츠는 유대인, 집시, 동성애자들의 무덤인 동시에 희망이 매몰된 곳이다.”

그 자신이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였던 엘리 위젤의 자전 소설『나이트』(예담,2007)를 보면, 아우슈비츠에서 베토벤이 살해당했다는 에릭 엠마뉴엘 주장을 실감할 수 있다. 아우슈비츠에는 유럽 각지에서 체포된 유대인 연주가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있었고, 강제수용소의 수감자들은 그들이 연주하는 행진곡에 맞추어 작업장으로 향했다. 이 오케스트라의 단원이었던 네덜란드 태생의 유명 바이올리니스트가 엘리 위젤에게 들려준 바에 따르면, 나치 친위대는 유대인 오케스트라에게 베토벤을 연주하지 못하게 했다. “유대인은 독일 음악을 연주할 수 없었다.”

누구도 홀로코스트를 부정할리 없겠지만, 서구 작가들이『살해당한 베토벤을 위하여』에서 반복하고 있는 호들갑만은 이제 사양하고 싶다. 따져보면 홀로코스트가 있기 전에, 서구인들은 아프리카 ․ 아메리카ㆍ아시아 대륙에서 600만의 몇 배나 되는 인류를 살상했다. 하지만 그것은 아우슈비츠에 필적하는 인류의 실패로 인정받지 못했다. 홀로코스트는 ‘서구 문명에 의한 서구 문명 학살’이었기에 그들의 역사가 되고 비극이 될 수 있지만, ‘서구 문명에 의한 비서구 문명 학살’은 비극도 역사도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것은 비서구보다 문명이 앞섰던 서구가 짊어져야 했던 고단한 ‘백인의 짐’으로 수긍된다.

서구의 신인 작가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등장하는 최고의 방법은 홀로코스트에 대해 쓰는 것이다. 또 서구 작가들 가운데 중견이 되면 “이제 나도 홀로코스트에 대해 고해할 때가 되었다”는 식으로, 홀로코스트에 대해 쓰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삐딱한 시선은 음모론과 결부될 것이 아니라, “홀로코스트 이후에 예술이 가능한가?”라는 아도르노의 고뇌를 서구 작가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확장하고 있는지와 올바르게 연관되어야 한다. 훗날 시오니스트로 변신했던 엘리 위젤이 그랬듯이, 이런 확장이 없는 ‘홀로코스트 서부극’ 혹은 ‘홀로코스트 포르노’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인종살해를 지원하는 문화적 병참(兵站)이 된다. 팔레스타인인들이 거의 절멸한 다음, 서구 작가들이 아도르노의 위선적인 질문 앞에 벌거숭이로 다시 서지 않기를 바란다. “나크바(Nakba: ‘대재앙’이라는 뜻으로, 이스라엘이 건국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이 고향에서 쫒겨난 것을 가리킴) 이후에 예술은 가능한가?”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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