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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준 칼럼] 수출 세계 6위 vs. ICBM 세계 6위

입력
2018.01.16 15:3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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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무역대국으로 성장하는 동안

북은 군사적 성취에 힘 쏟아 부어

총칼 녹여 쟁기 만들 계기 필요해

지난 연말 낭보가 전해졌다. 우리 수출이 연간 5,000억 달러를 상회하여 세계 6위 수준을 회복했다는 뉴스였다. 2015년 시점에도 같은 순위를 기록한 바 있지만, 이후 전개된 국내외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중국 미국 독일 일본 네덜란드에 이어 다시 세계 6위 수준을 달성한 것이다. 이들 국가 외에 10위권에 포진한 프랑스 이태리 영국 등은 모두 공통적으로 일찍이 근대화에 성공하고 제국의 경험도 가졌던 선진 국가들이다. 그 점을 염두에 두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가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한국이 세계 유수의 경제력을 가진 국가로 발돋움하였다는 것은 스스로 경하할 만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성취를 이룩하기까지 산업역군들과 기업가 등 국민 전체가 기울인 노력을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중에서도 정부 수립 초기부터 통상국가의 방향성을 정립한 국가 지도자들의 선견지명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공업발전과 국제통상을 중요 정책 방향으로 강조한 바 있다. 박정희 대통령도 수출진흥을 국시처럼 강조하면서 매월 무역진흥확대회의를 개최하고, 대한무역진흥공사 등 관련 기구를 설치하고, 수출에 직결되는 철강 조선 자동차 전자 등 핵심 산업을 중점 육성하였다. 이러한 국가적 노력의 결집이 세계 6위 수준의 수출국가를 견인해 낸 원동력이 되었다.

지난해 북한은 세계 여섯 번째로 대륙간 탄도탄(ICBM) 개발에 성공하였다. 7월14일 고각으로 발사한 화성-14형 미사일은 사정거리 8,500킬로미터까지 날아갈 수 있는 ICBM임이 입증되었다. 이어 11월29일 발사한 화성-15형 미사일도 사정거리 1만3,000킬로미터의 위력을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로써 북한은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이스라엘에 이어 ICBM을 보유한 국가가 되었다. 물론 북한이 이외에 SLBM도 개발하고 있고, 이러한 미사일들이 핵탄두의 주요 운반수단으로 사용되리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비록 북한이 우리와 다른 방향으로 국가발전의 경로를 선택했지만, 그 군사적 성취도 거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일성 주석은 해방 직후부터 독자적 병기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이 강력한 무력 건설과 그에 바탕한 자주국가를 건설하는 지름길이라고 역설하였다. 이러한 방침에 따라 평양 교외에 무기 공장을 건설하여 이미 1949년에 기관총과 수류탄 등 주요 화기를 독자적으로 생산하는 체제를 갖추었다. 국방공업 중점 육성 방침에 따라 노동당 군수공업부, 국방과학원, 핵무기연구소 같은 제도들이 조직되었고, 군수산업에 종사하는 과학기술자들이 우대되었다. 이러한 체제를 바탕으로 김정일과 김정은 시대에 이르러 핵 및 미사일 개발 같은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요컨대 남북한 간에 지도자가 강력하면서도 일관된 의지를 보이는 분야에 대해 국가자원이 집중 투입되면, 무언가 성과를 낳는 패턴이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남북 고위급 회담의 극적인 합의에 따라 수출 세계 6위 국가와 ICBM 개발 세계 여섯번째 국가가 평창 동계올림픽에 같이 참가하게 된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북한을 스포츠 제전에 초대한 것은 비군사적 분야의 교류와 대화 확대가 안보위기를 완화하고, 궁극적으로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가져오게 되리라는 신념 때문이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을 통해 이같은 신념을 표명한 바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1988년 7월, 노태우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 그리고 2000년 3월,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 연설 등을 통해 이같은 비전이 한국 정치가들 사이에 연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역대 지도자들이 구상했던 한반도 평화체제의 염원이 언젠가 세계를 놀라게 하는 또 다른 성과로 결실을 맺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이번 평창올림픽이 총칼을 녹여 쟁기를 주조해 내는 한반도 평화전략의 시발점이 되길 기대해 본다.

박영준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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