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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의 멍멍, 꿀꿀, 어흥] 동물도 행복한 나라, 부탄에는 도살장이 없다

입력
2018.01.12 14:0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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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채식… 암도 거의 없어

관광객 늘면서 고기 수입·유통

거리 어슬렁거리는 개들은 온순

밤에 짖는 소리 커도 불평 안 나와

부탄은 세계에서 가장 가기 힘든 나라 중 하나다. 험준한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부탄 정부는 외국인에게 비싼 관광세를 받는다. 이 두 가지 문턱 때문에 부탄은 외국인이 들어가기 힘든 나라이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부탄의 자연과 문화가 세계화의 광풍에서도 지켜지고 있다. 지난해는 한국 부탄 수교 30주년이었고, 한국 관광객에게 파격적인 할인 혜택이 주어졌다. 이 틈을 타 지난 여름 부탄 여행길에 올랐다.

길을 가다 보면 소들이 길을 점령하거나 유유히 지나가는데 빨리 가라고 경적을 울리는 차는 없다.
길을 가다 보면 소들이 길을 점령하거나 유유히 지나가는데 빨리 가라고 경적을 울리는 차는 없다.

해발 2,200m에 위치한 파로 공항에 착륙해 수도 팀부로 가는 길.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도로를 걸어 다니는 소들이었다. 동물의 자유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부탄에서 소들은 갇혀 사육되지 않고 방목돼 도처에 널린 풀을 먹고 살아간다. 소들이 도로 한복판에 누워있거나 차 앞을 가로막는 일이 흔하지만 경적을 울리는 차는 없다. 소가 차를 피할 때까지 기다린다. 농업에 중요한 노동과 치즈를 주는 고마운 소를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게 부탄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천길 낭떠러지 위 비좁고 험한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도 소가 나타났지만 운전사들은 투덜대지 않고 곡예 하듯 소를 비켜갔다. 도로 위에 동물은 많지만 로드킬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 역설.

부탄의 음식은 신선한 채소 위주인데 한국처럼 고사리와 고추를 즐겨먹는다. 가지 튀김 등 맛깔스러운 음식이 많다.
부탄의 음식은 신선한 채소 위주인데 한국처럼 고사리와 고추를 즐겨먹는다. 가지 튀김 등 맛깔스러운 음식이 많다.

부탄에는 도살장이 없다. 살생을 금하는 불교국가이기 때문이다. 여행 중 식당에서 먹은 대부분의 식사는 채식 위주였다. 고기가 나오긴 했지만 뷔페식이라 비육류 선택이 얼마든지 가능하고 채소와 면 종류가 많다. 농업국가이며 불교국가인 부탄에서 식사는 전통적으로 거의 채식이었다. 그런데 최근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고 인도 등 주변국에서 들어오는 이주민이 늘면서 육류 소비가 늘고 있다. ‘도살장은 없는데 고기는 유통되는’ 부탄 사회가 뭔가 모순처럼 보였지만, 동물을 ‘먹기 위해’ 사육하는 일은 없고 수입에 의존하는 정도다. 공장식 축산에서 수십억 마리의 동물을 식용으로 사육하고 공장화된 도살장에서 도살하는 나라들에 비하면 부탄의 육류 소비는 비교가 안될 만큼 적은 수준이고 그만큼 축산업이 일으키는 온갖 질병 문제와 환경오염 문제에서도 부탄은 자유롭다. 최근까지 부탄 사람들은 암이 뭔지 모르고 살았을 정도로 매우 건강한 편이다.

부탄에선 개들도 길에서 마음 놓고 쉬며 잔다. 개를 해치거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개들도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
부탄에선 개들도 길에서 마음 놓고 쉬며 잔다. 개를 해치거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개들도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

도시는 개 천지였다. 덩치 큰 개들이 가게 앞이나 공원에서 태평하게 늘어져 있거나 마음대로 돌아다닌다. 팀부 도심에 있는 호텔에서 첫 번째 밤을 보냈는데, 밤이 깊어지자 온 도시의 개들이 다 함께 짖어댔다. ‘론리 플래닛’ 부탄 편에서 ‘여행자는 필히 귀마개를 지참하고 올 것’이라 권고할 정도다. 이쯤 되면 개들을 도시에서 없애자는 불평이 나올 법도 한데 부탄 사람들은 개들도 도시의 시민으로 인정하고 살아간다. 개들은 온순했다. 사람들이 개를 함부로 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히말라야 산중에 자리 잡은 ‘오래된 미래’의 왕국. 물질적으론 가난하지만 국민행복지수는 높은 ‘행복의 나라’. 이것이 여행 전 내가 알았던 부탄의 전부였다. 여행을 다녀온 후 내가 알게 된 것은, 부탄은 동물의 행복지수도 높은 나라라는 것이다.

(부탄의 야생동물 이야기는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글·사진= 황윤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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