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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남의 행복세상] 청마 유치환의 ‘행복’

입력
2017.10.31 12:5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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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파악’과 ‘분수’가 노후의 지혜

있는 돈에 맞추어 지출을 제한해야

나보다 힘든 사람에 나눔 실천하길

필자는 지난 10월 12일 ‘한국생산성본부 CEO 북클럽’의 초청을 받고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라는 강연을 했다. 당초 필자는 본인의 전공이나 관심 분야가 북클럽의 주제 ‘신산업혁명’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만큼 강연을 망설였다. 하지만, 결국 초청에 응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개인과 사회가 두루 행복하기 위한 방법을 나름 정리해 보기로 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생명표에 의하면, 1960년 52세에 불과하던 한국인 평균수명은 2015년에는 82세를 넘어섰다(남자 79세, 여자 85세). 55년 동안에 30세나 늘어난 셈이다. 이런 추세라면 평균수명이 90세가 될 날도 머지않았다. 그 만큼 은퇴 후 살아야 할 노년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생이 길다는 것은 생각만큼 즐거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노후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맞는 노년은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온다.

노년의 가장 큰 걱정은 아무래도 ‘경제적인 준비’라고 할 수 있다. 각종 언론에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노후자금은 얼마’라는 식의 보도가 자주 나온다. 하지만, 필자는 ‘노후를 위한 필요자금’이라고 특정 금액을 보도하는 것에는 의견을 달리한다. 은퇴 시점에서 필요한 노후자금이 5억 원이라는 보도를 보고 3억 원 정도의 노후자금을 준비해 놓은 사람이 모자라는 돈을 채우기 위해 사업을 벌이다가 날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노후생활의 지혜는 국어와 산수 시간에 배운 ‘주제 파악’과 ‘분수’ 지키는 삶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은퇴 시점에서 ‘있는 돈에 맞추어 지출을 통제’하는 소위 ‘양입제출(量入制出)’을 권장한다.

다음은 행복지수에 관한 이야기다. 행복의 반대는 ‘불행’이 아니라 ‘불만’이다. 불만이란 자기가 바라는 것을 채우지 못했을 때 느끼는 심적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행복지수는 자기가 바라는 것 가운데 얼마만큼 채웠는가에 대한 비율이다(행복지수=자기가 성취한 것/ 자기가 바라는 것). 따라서 행복지수를 높이는 길은 ‘더 많이 성취하는 방법’도 있지만 ‘더 적게 바라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필자는 가끔 주례사에서 신랑과 신부에게 결혼식이 끝난 후부터는 서로 상대방에 대한 기대수준을 반으로 줄이라는 당부를 하곤 한다. 설령 상대방이 예전 기대치의 70%만 해준다고 하더라도 기대수준을 50% 낮춘 후라면 불만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게 될 것이다. 이 원칙은 부모와 자식 간에도, 친구 간에도, 직장 동료 간에도 널리 적용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끝으로 ‘행복해지려면 다른 사람과 비교하라’고 권한다. 사람들은 흔히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비결’이라고 하지만, 필자는 그와 반대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남과 비교하는 습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인간에게 남과 비교하지 말라고 주문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고 해가 안 떴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다만, 비교할 때 나보다 나은 사람만 쳐다보지 말고 전후좌우를 두루 살펴보도록 권한다. 그러면 세상 살기가 나만 힘든 것 같지만 모든 사람이 각자 나름 힘들게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걸 깨달음으로써 위안도 받게 되고 측은지심도 생길 것이다.

세계는 지금 저출산 고령화 등 여러 가지 요인이 겹쳐 복지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정부 혼자서 재정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개인이든 시민단체든 모두가 힘을 모아도 해결하기 쉽지 않은 지경이다. 이러한 때,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을 위해 나눔을 실천하는 일이야말로 개인도 사회도 두루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여기서 필자는 청마 유치환의 ‘행복’이라는 시를 떠올린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이를 조금 바꾸면 ‘도움 주는 것은 도움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가 된다. 필자가 잠시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교훈이기도 하다.

오종남 새만금위원회 공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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