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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철의 프레임] 뒷바람과 맞바람

입력
2017.05.04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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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갈 때와 미국에서 우리나라로 올 때의 비행시간은 계절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약 2시간 정도 차이가 난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제트기류로 인해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뒷바람의 혜택을 입고, 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는 맞바람의 저항을 받기 때문이다. 제트기류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시절에는 동일한 거리에서 발생하는 비행시간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고, 목표지점에 예상보다 빨리 혹은 늦게 도착하는 경우에 당혹스러워했다. 맞바람 때문에 늘어나는 비행시간을 고려하지 못한 채 충분한 연료를 싣지 않고 비행에 나서는 아찔한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안전한 비행기 운행을 위해서는 뒷바람과 맞바람의 힘을 고려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은 뒷바람으로 인한 시간 단축보다는 맞바람으로 인한 시간 지연을 더 크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자전거를 탈 때도 뒤에서 불어주는 바람의 고마움을 느끼기보다, 앞에서 불어오는 맞바람의 저항을 더 힘들어 한다. 골프 치는 사람들도 뒷바람으로 인한 거리의 증가를 감사해하기보다, 앞에서 불어오는 맞바람으로 인한 거리의 감소를 더 원망한다.

이와 동일한 원리가 인생에도 적용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더 부드럽게, 더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뒷바람의 힘을 인식하기보다, 우리의 삶을 더 어렵고 거칠게 만드는 맞바람의 힘에 대해서 예민하다. 흔히들 “시대를 잘못 만났다” “부모를 잘못 만났다”고 푸념한다. 시대가 자신의 인생에 맞바람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심지어 요즘 초등학생들은 재벌 아들이 되고 싶은데 아빠가 노력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이다.

최근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자신에게 불어오는 맞바람이 타인에게 불어오는 맞바람보다 더 거세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자신의 상황이 타인의 상황보다 더 불리하다고 믿는다. 인문학 교수들은 자연과학 교수들보다 자신들이 더 불리하다고 생각한다. 자연과학 논문은 실험 요약만 담아서 짧게 쓰면 되니까 일 년에 수 편씩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자연과학 교수들은 인문학 교수들의 일이 훨씬 더 쉽다고 생각한다. 엄밀한 검증과 심사 과정 없이 자신의 생각을 책으로 쓰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로가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교수들이 어찌 이 두 분야뿐이겠는가. 그래서 대학에서는 모든 학문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평가기준을 만들기가 어렵다. 심지어 한 학과 내에서도 동일한 평가기준을 만들기가 어렵다. 모두가 그 기준이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 제도는 매우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어서, 전체 유권자 득표에서 이기더라도 선거인단 수에서 져서 낙선할 수 있다. 당연히 반대 경우도 가능하다.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고, 그 이전의 조지 부시 대통령과 엘 고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민주당원과 공화당원에게 이 제도가 어느 당에 더 유리한지를 물었다. 그 결과, 양측 모두 자신들에게 더 불리하다고 답하였다.

첫째와 둘째 이하 자녀들에게 부모가 누구에게 더 엄격했는지, 그리고 더 편파적이었는지 물었더니, 모두가 자신이 더 부당한 대접을 받았다고 응답하였다. 동생들은 자신들이 첫째에 비해 부모의 기대와 지지를 못 받았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첫째들의 응답은 달랐다. 그들은 동생들과 싸우기만 하면 부모님들이 자신을 더 나무랐다고 응답했다. 첫째라는 이유만으로 양보를 강요당하기 일쑤였다고 느낀 것이다.

보수는 보수라서 불리하고 진보는 진보라서 불리하다고 생각한다. 가진 자는 가진 자라서 불리하고 가난한 자는 가난한 자라서 불리하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 모두가 자신들에게 불고 있는 뒷바람은 무시한 채, 앞에 있는 맞바람만을 주목하기 때문이다.

맞바람을 이겨내기 위한 추가적인 노력은 쉽게 인식할 수 있지만, 뒷바람의 혜택으로 인해 절약되는 노력은 잘 느껴지지 않는 법이다. 느낄 수 없다고 해서 뒷바람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의 삶에는 분명 뒷바람이 존재한다. 인생의 뒷바람에는 가족, 친구, 선생님과 같은 사람에서부터, 한 사회의 문화, 시대정신, 역사적 사건들과 같은 사회문화적 요인들까지 다양하다. 이 중에서도 특히, 문화나 시대정신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뒷바람들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 부모 세대의 높은 교육열은 우리 각자의 삶에 부드러운 뒷바람의 역할을 해주었다. 2002년 월드컵은 즐기는 문화를 창출하여 우리로 하여금 지나친 엄숙주의를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또한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는 동안 우리의 선배들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은 지금의 우리로 하여금 창의성, 개성, 행복과 같은 가치들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부디 이번 선거에서는 우리 사회의 뒷바람이 되어 줄 수 있는 분이 당선되었으면 좋겠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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