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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며] 작가 김미월의 서울의 동굴 가이드

입력
2017.03.10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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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소설가 김미월. 그의 작품은 세 편이나 영어로 번역되었을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 받고 있다. ‘서울의 동굴 가이드’는 어렸을 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고시원에 사는 젊은 여주인공 이야기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는 작품에는 방향을 상실한 채 지구의 종말을 맞는 한 여자가 등장한다. 또 다른 작품인 ‘플라자 호텔’에는 젊은이들의 욕망과 열정이, 공허하고 무미건조한 한 남자의 결혼생활과 대비되어 나타난다. 그의 작품 속 대부분의 등장인물은 나이와 신분에 관계 없이 어른으로서의 삶과 현대사회에 크게 실망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작년에 나는 서울북앤컬쳐클럽 행사에 그를 초청해 인터뷰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녀에게 왜 등장인물들이 모두 지쳐있고 우울한지를 물었는데, 김 작가는 그 이유를 정부와 낮은 경제 성장률, 그리고 안전과 복지에 대한 현대인들의 실망과 관련 있다고 대답했다. 그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구조와 물질만능주의에 지쳐있다. 젊은이들은 끊임없이 직장을 구하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고 이러한 상황은 어른으로써 평범한 가정을 꾸리려고 하는 그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열심히 일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도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너무나도 어린 나이부터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걱정을 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며 그 결과 소설에 등장하는 젊은이들은 지치고 절망한 모습이다.”

이런 관점은 ‘서울 동굴 가이드’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소설에서는 서로가 단절된 채 각자의 작은 동굴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이름이 지정되지 않은 화자는 고시원에서 살며 동굴 체험관에서 일한다. 초등학생들이 동굴 체험 견학을 가는 곳이다. 고시원의 삶은 혼란스럽고 시끄러우면서도 외롭고 정적이다. 어렸을 적 어머니의 죽음에 따른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상태로, 아무런 목표도 희망도 없다. 어릴 때는 어딘가에 새로운 세계가 존재할 것이라고 믿었으나 이제는 그런 믿음조차 사라졌다. 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예상할 수 있는 것들만 경험하는 평범한 삶을 사는 것’뿐이다. 그녀의 고시원 옆방에 사는 또 다른 인물도 어릴 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둘 다 술과 약물로 자신을 달래려 애쓴 적이 있다. 그 둘은 소외되고 방치된, 의미와 방향을 상실한 젊은이들의 모습으로 묘사된 인물들이다.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화자는 엄청난 혼란에 빠지며 삶의 방향을 상실한 모습을 보인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그녀에게 올바른 길을 알려줄 누군가이지만 그런 존재는 없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과 불안함… 이는 내가 가르치고 있는 많은 젊은 학생들이 느끼는 감정이다. 나 또한 김 작가가 묘사한 젊은이들의 걱정과 불안을 이해한다.

김 작가가 고시원에서의 삶을 굉장히 우울하게 그려낸 점도 흥미로웠다. 그의 고시원 거주 경험이 어느 정도 반영되었다고 하는데, 고시원에서의 삶이 마치 관속에서 사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방음이 되지 않아 옆방 사람의 휴지 뽑는 소리나 휴대전화 진동소리까지 들렸던 고시원이었지만 역설적으로 만약 옆방에서 누군가가 자살을 한다고 해도 모를 삭막한 공간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고시원 삶에서 생겨나는 모든 감정이 현대사회를 상징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소설을 읽으며 작가 자신이 소설 속 등장 인물에 깊은 연민을 품고 있음을 느낀다. ‘플라자 호텔’의 우울한 남편은 과거를 꿈꾸며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는 작품에서는 달콤한 아이러니 같은 것이 있다. 그는 또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특유의 친절하고 따스한 눈길로 묘사한다. 이 때문에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실수를 함부로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가 그를 현재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작가로 만들어주지 않았을까 싶다. 그의 더 많은 작품들을 번역본으로 만나보고 싶다.

배리 웰시 서울북앤컬쳐클럽 주최자ㆍ동국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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