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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며] 한국사람 다 됐네

입력
2017.02.03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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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오래 살면서 자주 들은 말 중에는 한국 사람 다 됐다는 칭찬이 있다. 들을 때마다 기분이 묘하지만 자기 자신을 다시 돌아 보게 하는 말이다. 나의 주변을 봐도 내가 다른 많은 외국인보다 한국생활 적응을 잘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다. 외국인들이 자주 쓰는 인터넷 포럼이나 글을 읽어 보면 하소연을 늘어놓기 바쁘고 한국이 살기에 불편하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나는 불편함이 전혀 없이 14년 차를 잘 살고 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한국인이 되었다는 건 지나친 말이 아닐까 싶다.

적응이라는 말은 뚜렷한 선이 없는 개념이다. 과연 불만이 없어지는 순간부터 적응이 다 된 건가. 그렇다면 그냥 참는 것과 적응을 어떻게 구분할 건가. 내 친구 중에도 한국에 대한 불만 불평을 안 하는 사람도 많다. 그냥 그럭저럭 일상을 보내는 삶이다. 그렇다고 그 친구들이 한국에 적응한 건 누가 봐도 아니다. 다른 나라 문화에 적응하는 것은 그 나라에 오래 산다고 무조건 얻게 되는 자연스러운 결과는 아닌 것 같다.

나도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 불만이 많았다. 첫해에는 아주 간단하고 사소한 것들이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러시아와 음식이 다르고, 대중교통 이용 방법도 다르고 심지어 샤워 할 때 물이 안 맞아 머리카락과 피부에 트러블이 생긴 것도 짜증 났다. 한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 취직해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 수준이 다른 불만이 더 늘어났다. 한국 기업문화, 회식 문화, 서열식 문화, 한국 문화 자체에 대한 불평이 산더미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처럼 어느덧 예전에 불만이었던 것들이 무관심으로 변하고 여태까지 별 관심이 안 간 것들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주변 친구들을 보면 적응은 꼭 본인의 자발적인 태도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살고 있는 나라의 문화, 사람들, 언어에 진지한 관심을 가져야 적응이 쉬어진다. 한국에 많이 오는 영어 원어민 선생님 대부분이 한국에 대해 징징거린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없으면서 근로계약 기간만 채우면 다시 집으로 돌아갈 시간만을 기다리는 태도 때문이다.

한국 살이 14년 차인 지금의 나는 한국 생활에서 불평이 전혀 없다. 성인기를 다 한국에서 보낸 나는 러시아보다 오히려 한국이 더 집 같고 정서적으로 더 잘 맞는 것 같다. 그러나 “한국 사람 다 됐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이상하다. 전문적으로 한국학을 배워서 한국에 오래 살았으니 한국 문화, 역사, 사회 등에 대하여 어느 한국인보다 더 잘 알 수 있지만 정체성을 속일 수 없다.

어떨 때는 나 스스로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해외로 나갈 때마다 한국이 그립고, 외국인 친구들이 한국을 욕하기 시작하면 무조건 한국 편 든다. 한국은 단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외국인 앞에서 한국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하다. 러시아에서 관광객이나 친구가 와서 서울을 보면서 와! 감탄을 낼 때마다 괜히 뿌듯하다. 신기하게도 얼마 전부터 해외에 나가면 어디서 왔냐는 질문에 한국에서 왔다고 답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국인은 아니다. 민족을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다.

한국 사람이 다 됐다고 칭찬하는 한국 사람들의 좋은 마음을 잘 이해한다. 한국 사람 보기에는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이렇게 오래 살고, 언어도 배우고 집을 가진 것은 신기하고 희한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자. 미국에 이민 가서 20년 살고 영어도 완전히 정복한 한국인에게 미국 사람이 “너 한국 사람이 아니라 완전 미국 사람이야!”라고 하면 기분이 어떨까. 한민족 소속감을 갖는 사람이면 기분이 묘할 것이다. 이제 한국말 잘 하는 외국인을 보고 한국인 같다는 말이 꼭 좋은 칭찬이기만 할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일리야 벨랴코프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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