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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 칼럼] 김구, 박근혜, 그리고 통일에 대하여

입력
2016.10.2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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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스캔들로 임기 내내 고생하며, 그 어떤 성취도 이루지 못해 내는 것 같아 박근혜 대통령이 안쓰럽다. 전직 대통령들의 슬픈 역사가 언제 멈출 것인가. 여성 정치가로서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여러 미덕이 많지만, 그중에서 가장 멋있게 보였던 시점은 북에 올라가 김정일과 4시간에 걸쳐 독대하고, 평양 만수대 예술극장도 방문했던 때다. 돌아와서 김정일에 대해서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한반도기를 흔들자는 제안을 할 정도로 통일에 대해 열린 태도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와 같이 열린 태도를 보이는 정치인들이 보수 정당에서 많이 나온다면 통일이 멀지 않으리라는 장밋빛 희망을 품기도 했었다.

국회의원 박근혜가 북한에 가서 그쪽 독재자를 만나는 장면은 해방 직후 김구와 김규식이 많은 사람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한의 김일성 김두봉과 만나 이른바 4김 회담을 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당시 김구는 이승만을 밀어주는 미 군정에 반대해 통일되기 전에 남한의 단독정부를 세워서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여러 정치적인 이슈 때문에 구석으로 몰린 상태에서, 남북협상이 정치적인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통일에 대한 김구의 순수한 희망은 여지없이 깨지고, 결국 암살당하고 만다.

2002년 국회의원 박근혜가 북한을 방문할 때 역시 한나라당의 개혁 문제로 이회창 당시 총재와 반목하여 한국미래연합이라는 신당을 국회의원으로선 혼자 창당했던 시점이었다. 본인이나 자신의 자식들은 전혀 전쟁터로 갈 뜻이 없으면서 일단 전쟁부터 하자는 전쟁광 정치인들 사이에서 꿋꿋하게 평화에 대한 신념을 지키며 김정일과 만나 통일에 대한 비전을 나누었다. 어쩌면 김구의 맥을 잇는 “여성적인 포용성을 갖고 평화를 지향하는 정치인”이 될 수도 있었다. 융 심리학 용어를 쓰자면, 김정일과 박근혜 대통령이 함께 환한 미소를 지으며 찍은 사진은 ‘대극의 통합’ 이미지에 근접한다. 김정일은 당시 주체사상과 공산주의의 아이콘이었으며 박근혜 대통령 역시 부모를 모두 정치적 격랑에서 잃은 남한 보수주의의 아이콘이었다. 세계관과 도덕적 수준의 다름은 있지만 독재자의 자녀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비슷했으니, 상당히 비슷한 정서적 경험을 나누었을 것도 같다. 그 같은 맥락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대박”을 주장했을 때, 통일에 대한 희망으로 가슴 뛴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보수적 신자유주의 정치인이 북한의 봉건적 김일성주의를 포용한다면, 역사 이래 대사건이 아닌가. 대한민국이 ‘북한 콤플렉스’ 혹은 ‘레드콤플렉스’에서 벗어나 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정치 경제가 발전할 기회였다. 한데, 김구의 통일에 대한 염원이 북한의 사악한 김일성 집단과 이승만 대통령의 아집으로 여지없이 짓밟혔던 것처럼, 핵실험을 일삼는 김정은과 현재의 체제가 공고하게 유지되기를 원하는 남북한의 정치세력들을 끝내 이기지 못한 탓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주었던 통일에 대한 비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게 되었다.

전직 외교관의 회고록 때문에, 연일 매스컴이 시끄럽다. 내통했네, 보고네, 통보네, 16일이네, 20일이네, 자잘한 디테일로 목숨 걸고 싸우는 통에 귀와 눈이 피곤하다. 물건값 깎다가 말싸움이 벌어져 머리채를 잡고 싸웠던 시장의 장삼이사들과 어쩜 그렇게 똑같은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넘어가거나, 맥락은 보지 못하고 자구 몇 개를 갖고 늘어질 게 아니라, 당시 참가했던 이들과 이를 공격하는 이들이 함께 만나, 북한 인권에 어떻게 대처할지 지금이라도 토론의 장을 함께 마련하라. 당시 판단에 문제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검증을 받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서로의 이견을 조율하면서 제3의 대안을 만들어 나가면 된다.

과거 타령에 몰두할 만큼 우리 경제가 그렇게 한가한가. 정쟁에 몰두하면 할수록 분단 현실이 고착되면서 우리의 살림살이만 고꾸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본질적 과제다. 오로지 권력 쟁취에만 목숨 걸고 있는 요즘 정치인들을 보면, 개인적 영리만 쫓다 결국 비참하게 목숨을 잃은 사마천 사기에 나오는 혹리(酷吏)들이 생각날 정도다.

참으로 북한의 인권이 걱정된다면, 일단 만나서 따져라. 모든 대화를 내통으로 몰고, 소통의 창을 닫아 버린다면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 북한의 인권을 걱정하면서 약품과 분유 같은 인도주의적 도움까지 끊어버린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후 리비아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등까지 확장된 지옥도를 보면서도 “전쟁 불사”를 외치는 사람들의 심리검사를 하면 숨겨진 개인적 분노가 많을 것 같다. 얼마 전 죽은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은 젊어서는 팔레스타인과 평화 협정을 체결하고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지만, 말년에는 가자 지구 폭격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해 전쟁을 부추겼다. 살 만큼 살았으니 죄 없는 젊은이들과 어린이들이 죽어 나가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인가. 치매가 아니었다면 악마에게 영혼을 판 것 같다. 아무쪼록 박근혜 대통령은 평화와 풍요를 가져온 참 좋은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길 바랄 뿐이다.

이나미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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