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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렬 칼럼] 도시문명 대국, 네팔의 참사

입력
2015.04.2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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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네팔 도시문화 유럽 못잖게 융성

진동 취약 수직 벽돌조라 더 많은 피해

구조ㆍ도시 재건에 지원 아끼지 말아야

네팔은 처참하게 찢기고 무너졌다. 대지진으로 인해 사망자 4,000명에 육박했으나, 훨씬 더 많은 죽음이 무너진 폐허 아래에 아직 묻혀있다. 네팔 관리들은 사망자가 1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외신은 전한다. 지진 뿐 아니라, 단층과 지각이동 등 자연의 대재해가 이 가난한 나라를 덮친 것이다. 수도 카트만두 전체가 지각변동의 결과로 3m 이동을 했다니 얼마나 큰 재앙인가. 인도 아대륙은 호주와 같이 원래는 섬-대륙이었다. 지각 판의 이동으로 인도는 유라시아 대륙과 충돌하게 되었고, 그 결과 두 대륙 사이에 세계의 지붕이라는 히말라야 산맥이 솟아나게 되었다. 그 여력으로 지금도 매년 5㎜씩 산맥이 솟아오르는 불안정한 지형이다.

인구 2,500만의 작지 않은 나라, 네팔은 히말라야 등정과 산악관광국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네팔은 중세에 이미 찬란한 도시문명과 종교문화를 완성한 문명국이었다. 당시 강대국인 인도와 티베트를 잇는 유일한 교역로를 확보했고, 두 나라의 상인들은 카트만두 계곡에 발달한 도시국가에 머무르며 교역을 했다. 17세기에는 티베트의 은화 주조권을 가질 정도로 무역과 금융 면에서 일대의 강자가 되었다. 험준한 지형의 특성상 50여 개의 독립된 도시국가를 형성했고, 각자 독자적인 군대와 화폐를 가졌던 특별한 역사였다.

그 결과 도시문명의 밀도는 고대 아테네나 로마를 능가했고, 중세 르네상스 도시국가에 필적할 정도였다. 가장 번성한 카트만두 계곡에도 카트만두, 파탄, 박타푸르 등 여러 개의 강성한 도시국가가 위치했다. 이 도시들은 왕궁과 광장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사원과 고층 탑들을 건설했고, 4층이 넘는 고층 주택들이 도시를 가득 메웠다. 그 사이로 구불거리는 골목들이 발달했고, 가로 상점과 각종 편의시설들이 즐비했다. 그 공간적 구성은 이탈리아의 중세도시 피렌체나 시에나에 비견할 인류사의 보고였다.

휴양지로 유명한 포카라와 수도 카트만두의 여정 중간에 반디푸르라는 작은 산골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다. 산 위에 자리 잡은 이 마을은 흡사 알프스 산록의 유럽 마을과 같이, 유기적인 도시구조와 품격 높은 건축물이 온전히 보존된 곳이다. 이런 오지에 어떻게 이런 문명 도시가 가능했는지, 그리고 그 모습이 교류가 전혀 없었던 서구의 도시와 어쩌면 그리 유사한지. 네팔의 도시 문명은 학계의 수수께끼가 될 정도로 수준 높은 것이었다. 나라에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조금만 가꾼다면, 히말라야 못지않은 세계적인 관광자원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대지진은 그 문명들을 뿌리 채 붕괴시켰다. 네팔의 구조물들은 벽돌조의 뼈대에 목조 지붕틀을 얹은 것이다. 게다가 중세 때부터 고층화되었다. 도시의 주택들은 보통 4~6층의 아파트인데, 한 가구가 수직으로 여러 층을 소유하는 특별한 형식이었다. 균분상속제에 따라 땅을 쪼개서 상속했던 결과라고 한다. 10세대로 구성된 중세 아파트는 도로에서 10개의 현관을 통해 들어간다. 각 세대는 좁고 가파른 실내 계단을 통해 4~6개 층을 연결한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특이한 주거형식이지만 지진에는 매우 취약한 구조였다. 이번 지진이 워낙 강력하기도 하지만, 진동에 취약한 고층 벽돌조여서 더욱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원인이야 어떠하든, 전 세계는 네팔의 구조와 복구에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선 인명을 구조하고 재해민들을 원조하자. 최소한의 삶이 가능하도록 터전을 마련하는데 적극 도와야 한다. 한국 정부도 100만 달러를 긴급 원조했다는데, 훨씬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 후에는 붕괴된 도시 문명을 재건하는데 더 큰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무너진 네팔의 도시와 문화유산들은 인류 모두의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ㆍ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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